"김희재 보러 왔어요"…뮤지컬에 부는 '트로트 바람'
지난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 공연장인데도 객석은 50~60대 중장년들로 가득 찼다. 20~30대가 대부분인 다른 뮤지컬 공연장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진 것.

가장 큰 이유는 출연 배우였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이날 주인공이 트로트 가수 출신 배우 김희재였기 때문이다. TV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 출신인 그가 공연하는 날이면 머리 희끗한 팬들의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상당수는 공연을 마친 김희재의 퇴근길을 마중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주변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들이 점령해온 뮤지컬 무대에 트로트 가수 출신 배우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갑이 두툼한 중장년층을 팬덤으로 거느린 덕분에 아이돌 출신 못지않은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르고 있다.

17일 티켓 예매업체 인터파크에 따르면 이날 기준 뮤지컬 ‘모차르트!’ 예매자 중 50대 비중은 17.4%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뮤지컬의 주소비층인 20대(28.7%)보단 낮지만, 다른 뮤지컬에 비하면 50대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20년 열린 같은 공연의 50대 관객 비중은 5.1%였다. 업계 관계자는 “중장년층 팬을 보유한 트로트 가수가 뮤지컬에 나오자 팬들이 자연스럽게 공연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뮤지컬 시장에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트로트 가수는 김희재뿐만 아니다. 지난해 뮤지컬 ‘서편제’는 TV프로그램 ‘미스트롯’ 출신인 가수 홍자 양지은 홍지윤 등을 주인공 송화 역에 캐스팅해 화제가 됐다. 같은 프로그램 출신 가수 황우림은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역할을 맡아 공연 중이다.

이런 캐스팅은 몇 년 전 뮤지컬 제작업체들이 아이돌 가수 캐스팅으로 홍보·마케팅 효과를 누린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작품에 인기 아이돌 출신 배우를 한두 명 캐스팅하면 티켓과 굿즈(기념 제작 상품) 판매가 대폭 올라가다 보니 아이돌 캐스팅은 하나의 법칙이 됐다. 그렇게 옥주현과 김준수가 뮤지컬 스타가 되자 그룹 엑소의 수호, 슈퍼주니어의 규현, 비투비의 이창섭 등이 뒤따랐다.

최근 트로트 가수의 인기 및 팬 규모가 여느 아이돌 가수 못지않게 급성장하면서 작품 홍보 효과를 노리고 뮤지컬에 트로트 가수를 캐스팅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연령대와 구매력이 높은 트로트 팬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여 뮤지컬 관객층을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

김희재는 뮤지컬에 잘 어울리는 창법으로 장르 전환에 성공했다는 호평을 듣지만 일각에선 섬세한 감정 전달 등이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가창력과 ‘끼’를 두루 갖춘 트로트 가수들은 뮤지컬 배우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아이돌 가수 캐스팅 초기에 불거진 실력 논란이 트로트 가수 캐스팅에서 재연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