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근 작가와 대형 작품. 작가 제공
김원근 작가와 대형 작품. 작가 제공
반짝이는 체인 금목걸이, 화려한 색깔의 꽃무늬 셔츠, 콧수염이 난 험상궂은 얼굴, 커다란 덩치에 펑퍼짐한 몸매…. 김원근 작가의 조각 캐릭터다. 그는 '건달'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캐릭터를 작품으로 만든다. 다만 심각한 분위기의 건달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귀엽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생김새는 험상궂지만, 하는 행동은 순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건달 외모의 캐릭터가 애완동물을 조심스레 안고 있는 모습, 꽃다발을 들고 여성을 기다리는 모습,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 등을 조각으로 만든다"며 "생김새에 걸맞지 않게 순수하고 귀여운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친근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특징 덕택에 경기 양평역, 세종문화회관 앞 등 공공장소에 작품을 설치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김원근 작가의 작품들. 작가 제공
김원근 작가의 작품들. 작가 제공
김 작가는 이런 작품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공감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왜 이런 작품이 사람들을 공감시키고 위로할 수 있다는 걸까. 그는 "작품 속 캐릭터는 사실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는 인물"이라며 "반짝이는 금목걸이는 삐뚤어진 허세를 상징하고,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 역시 이 캐릭터가 평소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김 작가는 "보통 직장인들도 평소 회사에서 유능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느냐"며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원했던 대로 풀리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못난 점이 더 많은 캐릭터를 통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을 통해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주고 싶다고 한다. 김 작가 작품의 캐릭터는 사실 외모를 빼면 건달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작가는 오히려 그와 상반되는 내용을 종종 작품에 숨겨 놓는다. 캐릭터가 입고 있는 옷의 무늬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캐릭터의 옷에 모란꽃을 자주 그려 넣는데 이는 행복, 풍요, 다산 등을 상징한다. "험상궂은 인상의 사람도 사실 알고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일 수 있다"는 의미다.
작품을 만드는 김원근 작가. 작가 제공
작품을 만드는 김원근 작가. 작가 제공
첨단 기술의 시대지만 김 작가는 지금도 전 과정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철근 뼈대에 찰흙을 붙인 뒤 이를 석고로 캐스팅하고, 여기에 세라믹(도자기)이나 액체 플라스틱을 붓는다. 다 굳으면 석고를 떼어내고 아크릴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작품을 완성한다.

김 작가는 "3D 프린터로 작품을 만들어 본 적도 있지만 작품에서 손맛이 느껴지지 않아 금세 그만뒀다"며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에는 첨단 기술이 담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최근 해외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내년 1월에는 홍콩의 아트스페이스K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고, 3월에는 홍콩 바젤아트페어에 참여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