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 언어학자의 '8년 에세이'[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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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때 시각을 잃은 언어학자가 쓴 '보는 것에 대하여'
마이니치신문의 점자 매거진에 연재한 글을 모아 출판
마이니치신문의 점자 매거진에 연재한 글을 모아 출판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
호리코시 요시하루 지음
노수경 옮김
김영사
284쪽 / 1만6800원 시각장애인의 언어인 점자는 여섯 개의 점으로 이뤄졌다. 점자는 볼록한 점을 손가락으로 읽는 문자다.
일본어 점자에서 여섯 개의 점을 모두 채우면 ‘눈(め·目)’으로 읽힌다. 일본어 점자를 만든 이시카와 구라지는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잃어버린 눈 대신 영혼을 넣어주려 했다고 전해진다.
보통 듣기 싫은 말을 ‘귀에 거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읽기 힘든 문장은 ‘손가락에 거슬린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시각장애인 언어학자인 호리코시 요시하루는 책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는 2011년 1월부터 8년여간 ‘점자 마이니치’에 연재한 글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점자 마이니치는 마이니치신문에서 발간하는 점자 주간 신문이다. 두 살 무렵 시력을 잃어 ‘보지 않음’이 익숙한 저자가 겪어온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저자에게 시력은 텔레파시나 염력 같은 초능력과 비슷한 것이다. 흔히 시력 장애는 ‘빛을 잃고 어둠만 남은 상태’로 묘사되지만, 애초 빛을 본 기억이 없었던 저자는 시력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세상을 만져서 보고, 귀로 들어서 보고, 맛으로 보고, 냄새로 본다.
장애인과 대비돼 일본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인 건상자(健常者)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항변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어 대신 ‘눈으로 보는 부족’과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으로 구분 짓고자 한다. 저자에게 장애란 결핍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다. 에세이지만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익숙한 풍경이나 방식이어도 다른 각도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배려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장애인의 고용과 같은 사회적 정책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소통 없이 형성된 기계적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마주했을 때의 난처함도 토로한다.
100년 이상 된 점자 신문을 발행하고 있을 만큼 장애에 대한 인식이 앞서 있는 일본에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을 담고 있다.
또한 저자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전장연 시위’와 같은 이슈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갈등으로 굳어진 한국 사회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금아 기자
호리코시 요시하루 지음
노수경 옮김
김영사
284쪽 / 1만6800원 시각장애인의 언어인 점자는 여섯 개의 점으로 이뤄졌다. 점자는 볼록한 점을 손가락으로 읽는 문자다.
일본어 점자에서 여섯 개의 점을 모두 채우면 ‘눈(め·目)’으로 읽힌다. 일본어 점자를 만든 이시카와 구라지는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잃어버린 눈 대신 영혼을 넣어주려 했다고 전해진다.
보통 듣기 싫은 말을 ‘귀에 거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읽기 힘든 문장은 ‘손가락에 거슬린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시각장애인 언어학자인 호리코시 요시하루는 책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는 2011년 1월부터 8년여간 ‘점자 마이니치’에 연재한 글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점자 마이니치는 마이니치신문에서 발간하는 점자 주간 신문이다. 두 살 무렵 시력을 잃어 ‘보지 않음’이 익숙한 저자가 겪어온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저자에게 시력은 텔레파시나 염력 같은 초능력과 비슷한 것이다. 흔히 시력 장애는 ‘빛을 잃고 어둠만 남은 상태’로 묘사되지만, 애초 빛을 본 기억이 없었던 저자는 시력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세상을 만져서 보고, 귀로 들어서 보고, 맛으로 보고, 냄새로 본다.
장애인과 대비돼 일본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인 건상자(健常者)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항변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어 대신 ‘눈으로 보는 부족’과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으로 구분 짓고자 한다. 저자에게 장애란 결핍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다. 에세이지만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익숙한 풍경이나 방식이어도 다른 각도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배려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장애인의 고용과 같은 사회적 정책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소통 없이 형성된 기계적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마주했을 때의 난처함도 토로한다.
100년 이상 된 점자 신문을 발행하고 있을 만큼 장애에 대한 인식이 앞서 있는 일본에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을 담고 있다.
또한 저자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전장연 시위’와 같은 이슈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갈등으로 굳어진 한국 사회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