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pinion] 양귀자,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
삶은 늘 하찮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신호는 당연히 미미하여 놓치기가 쉽다. 놓칠 수밖에 없지만, 아주 가끔씩 하찮고 미미한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리하여, 우리들이 떨리는 음성으로 발음하는 '운명'이라는 드라마가 문을 열기 시작한다. 알고 보면 대단한 성공의 첫걸음이란 것도 사실 하찮고 또 하찮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2.
어려서부터 영웅전은 별로 읽지 않았다. 그렇다. 열 살 미만이던 시절의 내 독서는 만화가 전부였으나 영웅들이 설치는 만화는 절대 내 돈으로 빌려 본 적이 없다. 오빠들이 돈을 내면 마지못해 빌려다 주고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또 마지못해 들여다보았다.
영웅들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크게 울거나, 하나를 가르치면 한꺼번에 열 개를 알아버리거나, 적들과 만나도 절대로 죽지 않거나, 결국은 죽었구나 하면 다음 권에서 스르륵 다시 살아나 버리는, 도저히 나의 동료가 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마찬가지로 결심을 자주 하고, 그 결심을 노상 입으로 외우고, 심지어는 그것을 대문짝만 하게 써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날마다 마음을 다지는 스타일도 내 것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친구 집에 갔다가 처음으로 그런 광경을 목도하고 나는 그 애 역시 나의 동료가 될 수 없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렸다. 성품은 좋았으나 삶의 신호를 받는 방법이 나하고 틀렸던 것이다.
그런 성향은 여전해서 지금도 가끔 책을 읽다가 지은이가, 혹은 소설 속 주인공이 어느 날 문득 놀라운 계시를 받고 놀라운 열정으로 놀라운 일을 해내고 만다는 이야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섬광보다 더 아찔한 빛으로 다가와 그들의 영혼을 순식간에 변화시키고 마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알지 못한다. 나는 한 번도 영혼을 강타하는 섬광을 맞이하지 못했다. 남들은 곧잘 그런 식으로 삶의 궤도를 쓰윽 시원하게 돌려버린다는데 나는 왜…….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한동안은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꼭 있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뇌 속의 무엇 하나가 아마도 내게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과 함께 온 열등감이었다.
마음을 다스려보아도 문득문득 섭섭했다. 내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책을 읽었다. 지구상에는 무수히 많은 ‘책’이 존재해서 이 심란한 세상을 나처럼 강력한 영혼의 나침반 하나 없이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았기 때문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스스로를 변명하는 기술을 배워나갔다. 세상에는 영웅의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작은 눈물, 작은 꿈도 소중하다는 말을 띄엄띄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영혼이란 것은 벼락이 내려치듯 강타당하면서 진화하기도 하지만, 작은 마찰에 수시로 노출되면 누적된 양만큼 진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섬광 같은 찰나도 있지만, 미미한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가끔은 섬광처럼 빛을 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은 대부분의 삶이 다 그렇다. 극히 적은 예외까지 우리들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3.
그런 까닭에 선뜻 이 글을 쓸 수 없었다. 내 삶을 변화시킨 결정적 순간, 이를테면 영혼을 감전시킨 그런 순간은 없었다 하더라도 다소나마 영혼이 움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 오래 생각해야만 했다.
수위를 낮추고 들여다보니 그런 삽화들이 몇 가지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말했듯이 내가 삶에게서 신호를 받는 방식은 늘 그러했으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중에 두 가지를 골랐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것이다. 그 시절 기억나는 삽화들은 대략 만화가게에서 시작해 만화가게로 끝나는데, 이것은 용케도 국어 시간의 교실 풍경이다. 담임선생님이 교탁 위에 원고지 뭉치를 내려놓고 뒤적이고 있다. 찾고 있는 원고가 있다는 뜻이다. 짐작컨대 전날 작문 숙제를 제출했던 듯,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자신이 낸 작문이 몇 점을 얻었는지 선생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키가 큰 나는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 별로 긴장은 하지 않는다. 수학 숙제라면 틀린 개수대로 손바닥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작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정답이 없는데 심하게 틀릴 일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때 선생님이 원고 하나를 꺼내들고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든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던 나를 다짜고짜 불러 세울 이유는 전혀 없다. 선생님이 희미하게 웃는다. 제일 잘 쓴 글이니까 내가 한번 읽어주지. 그리고 선생님이 내가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제목, 안경…….
나는 고개를 푹 숙인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이 읽힐 줄 꿈에도 몰랐다. 알았다면 감출 건 좀 감추고 다소 멋지게 쓸 수도 있었다.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위로 오빠 둘에게 들어가는 안경 값이 만만치 않아서 나에게 안경을 맞춰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 산수 시간마다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교단 귀퉁이에 엎드려 필기를 하는 일의 민망함, 시력이 나빠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내 글을 읽으며 선생님은 마침내 하하, 웃었다. 아이들도 웃었다. 웃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참담했다. 숨겨놓았던 아홉 살짜리 자존심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었으니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내 손에 돌아온 작문 숙제에는 빨강 색연필로 ‘최우수’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울면서 이 사건을 고백했다. 엄마가 문제의 작문 숙제를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 후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안경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숙원사업이 해결되고 만 것이다. 이것도 원고료의 일종이라면, 내 생애 최초로 글을 써서 벌어들인 소득은 안경이었다.
안경 쓴 이후 더 이상 산수 시간에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안경을 쓰고 벗을 때마다 작문 숙제가 생각났다. 우수도 아니고 최우수였다는 내 글이 신기했다. 돌아온 작문 숙제를 열 번쯤 읽었고, 어느 날 문득 만화가게를 가지 않게 되었다. 대신 글자만 빼꼭하게 채워진 소설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괜히 국어 시간이 기다려졌다. 돌이켜보면, 아홉 살 어린아이의 모든 일상은 다 흑백인데 그중에서 책과 국어 시간만 컬러가 입혀져 있다. 특별한 무언가가 내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겠다.
4.
영혼을 강타하는 벼락은 아무에게나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 실금에도 불현듯 둑은 무너지고 물은 범람한다. 깃털 같은 눈송이도 쌓이면 지붕을 가라앉히고 거목을 쓰러뜨리듯 우리들 삶은 늘 하찮은 것으로부터 커다란 것을 일궈낸다. 열심히, 무조건 열심히만 살면 무엇이든 쌓인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결정적인 순간이란 곧 전력을 다하며 살아낸 순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글은 각계에서 일가를 이룬 명사 23명의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 결정적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미지박스)'에 실린 글을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발췌하였습니다.
초청 칼럼니스트 프로필 및 저서소개
양귀자는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원미동 사람들』(1987),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1989), 『희망』(1990),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1993) 『모순』등 우리 일상을 비추는 따뜻한 등불 같은 소설들을 발표해 왔다. 1988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특히 1995년 전생에 이루지 못한 영혼과의 사랑을 주제로 동양 정서를 현대화한 문제작 『천년의 사랑』을 발표, 한국 소설의 지형을 바꾸며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 글은 한경닷컴 '초청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다른 칼럼을 더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http://www.hankyung.com/board/list.php?id=column_invite&no=1&page=1
삶은 늘 하찮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신호는 당연히 미미하여 놓치기가 쉽다. 놓칠 수밖에 없지만, 아주 가끔씩 하찮고 미미한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리하여, 우리들이 떨리는 음성으로 발음하는 '운명'이라는 드라마가 문을 열기 시작한다. 알고 보면 대단한 성공의 첫걸음이란 것도 사실 하찮고 또 하찮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2.
어려서부터 영웅전은 별로 읽지 않았다. 그렇다. 열 살 미만이던 시절의 내 독서는 만화가 전부였으나 영웅들이 설치는 만화는 절대 내 돈으로 빌려 본 적이 없다. 오빠들이 돈을 내면 마지못해 빌려다 주고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또 마지못해 들여다보았다.
영웅들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크게 울거나, 하나를 가르치면 한꺼번에 열 개를 알아버리거나, 적들과 만나도 절대로 죽지 않거나, 결국은 죽었구나 하면 다음 권에서 스르륵 다시 살아나 버리는, 도저히 나의 동료가 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마찬가지로 결심을 자주 하고, 그 결심을 노상 입으로 외우고, 심지어는 그것을 대문짝만 하게 써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날마다 마음을 다지는 스타일도 내 것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친구 집에 갔다가 처음으로 그런 광경을 목도하고 나는 그 애 역시 나의 동료가 될 수 없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렸다. 성품은 좋았으나 삶의 신호를 받는 방법이 나하고 틀렸던 것이다.
그런 성향은 여전해서 지금도 가끔 책을 읽다가 지은이가, 혹은 소설 속 주인공이 어느 날 문득 놀라운 계시를 받고 놀라운 열정으로 놀라운 일을 해내고 만다는 이야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섬광보다 더 아찔한 빛으로 다가와 그들의 영혼을 순식간에 변화시키고 마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알지 못한다. 나는 한 번도 영혼을 강타하는 섬광을 맞이하지 못했다. 남들은 곧잘 그런 식으로 삶의 궤도를 쓰윽 시원하게 돌려버린다는데 나는 왜…….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한동안은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꼭 있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뇌 속의 무엇 하나가 아마도 내게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과 함께 온 열등감이었다.
마음을 다스려보아도 문득문득 섭섭했다. 내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책을 읽었다. 지구상에는 무수히 많은 ‘책’이 존재해서 이 심란한 세상을 나처럼 강력한 영혼의 나침반 하나 없이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았기 때문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스스로를 변명하는 기술을 배워나갔다. 세상에는 영웅의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작은 눈물, 작은 꿈도 소중하다는 말을 띄엄띄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영혼이란 것은 벼락이 내려치듯 강타당하면서 진화하기도 하지만, 작은 마찰에 수시로 노출되면 누적된 양만큼 진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섬광 같은 찰나도 있지만, 미미한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가끔은 섬광처럼 빛을 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은 대부분의 삶이 다 그렇다. 극히 적은 예외까지 우리들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3.
그런 까닭에 선뜻 이 글을 쓸 수 없었다. 내 삶을 변화시킨 결정적 순간, 이를테면 영혼을 감전시킨 그런 순간은 없었다 하더라도 다소나마 영혼이 움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 오래 생각해야만 했다.
수위를 낮추고 들여다보니 그런 삽화들이 몇 가지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말했듯이 내가 삶에게서 신호를 받는 방식은 늘 그러했으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중에 두 가지를 골랐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것이다. 그 시절 기억나는 삽화들은 대략 만화가게에서 시작해 만화가게로 끝나는데, 이것은 용케도 국어 시간의 교실 풍경이다. 담임선생님이 교탁 위에 원고지 뭉치를 내려놓고 뒤적이고 있다. 찾고 있는 원고가 있다는 뜻이다. 짐작컨대 전날 작문 숙제를 제출했던 듯,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자신이 낸 작문이 몇 점을 얻었는지 선생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키가 큰 나는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 별로 긴장은 하지 않는다. 수학 숙제라면 틀린 개수대로 손바닥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작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정답이 없는데 심하게 틀릴 일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때 선생님이 원고 하나를 꺼내들고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든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던 나를 다짜고짜 불러 세울 이유는 전혀 없다. 선생님이 희미하게 웃는다. 제일 잘 쓴 글이니까 내가 한번 읽어주지. 그리고 선생님이 내가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제목, 안경…….
나는 고개를 푹 숙인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이 읽힐 줄 꿈에도 몰랐다. 알았다면 감출 건 좀 감추고 다소 멋지게 쓸 수도 있었다.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위로 오빠 둘에게 들어가는 안경 값이 만만치 않아서 나에게 안경을 맞춰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 산수 시간마다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교단 귀퉁이에 엎드려 필기를 하는 일의 민망함, 시력이 나빠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내 글을 읽으며 선생님은 마침내 하하, 웃었다. 아이들도 웃었다. 웃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참담했다. 숨겨놓았던 아홉 살짜리 자존심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었으니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내 손에 돌아온 작문 숙제에는 빨강 색연필로 ‘최우수’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울면서 이 사건을 고백했다. 엄마가 문제의 작문 숙제를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 후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안경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숙원사업이 해결되고 만 것이다. 이것도 원고료의 일종이라면, 내 생애 최초로 글을 써서 벌어들인 소득은 안경이었다.
안경 쓴 이후 더 이상 산수 시간에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안경을 쓰고 벗을 때마다 작문 숙제가 생각났다. 우수도 아니고 최우수였다는 내 글이 신기했다. 돌아온 작문 숙제를 열 번쯤 읽었고, 어느 날 문득 만화가게를 가지 않게 되었다. 대신 글자만 빼꼭하게 채워진 소설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괜히 국어 시간이 기다려졌다. 돌이켜보면, 아홉 살 어린아이의 모든 일상은 다 흑백인데 그중에서 책과 국어 시간만 컬러가 입혀져 있다. 특별한 무언가가 내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겠다.
4.
영혼을 강타하는 벼락은 아무에게나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 실금에도 불현듯 둑은 무너지고 물은 범람한다. 깃털 같은 눈송이도 쌓이면 지붕을 가라앉히고 거목을 쓰러뜨리듯 우리들 삶은 늘 하찮은 것으로부터 커다란 것을 일궈낸다. 열심히, 무조건 열심히만 살면 무엇이든 쌓인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결정적인 순간이란 곧 전력을 다하며 살아낸 순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글은 각계에서 일가를 이룬 명사 23명의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 결정적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미지박스)'에 실린 글을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발췌하였습니다.
초청 칼럼니스트 프로필 및 저서소개
양귀자는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원미동 사람들』(1987),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1989), 『희망』(1990),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1993) 『모순』등 우리 일상을 비추는 따뜻한 등불 같은 소설들을 발표해 왔다. 1988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특히 1995년 전생에 이루지 못한 영혼과의 사랑을 주제로 동양 정서를 현대화한 문제작 『천년의 사랑』을 발표, 한국 소설의 지형을 바꾸며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 글은 한경닷컴 '초청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다른 칼럼을 더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http://www.hankyung.com/board/list.php?id=column_invite&no=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