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제도와 활발한 기업가 정신…영국 산업혁명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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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8) 산업혁명은 왜 영국에서 발생했나?
17세기 일어난 명예혁명, 재산권 제도적으로 보장…기업가정신 촉발시켜
경쟁 제한하는 길드 아닌 자유로운 선대제도 발달…투자·혁신 활발히 일어나
한국경제·한국제도경제학회 공동기획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8) 산업혁명은 왜 영국에서 발생했나?
17세기 일어난 명예혁명, 재산권 제도적으로 보장…기업가정신 촉발시켜
경쟁 제한하는 길드 아닌 자유로운 선대제도 발달…투자·혁신 활발히 일어나
한국경제·한국제도경제학회 공동기획
인류 역사에서 사람들이 빈곤과 질병의 질곡에서 벗어나 오늘날과 같은 삶의 질 개선을 가져온 획기적인 계기는 단연 산업혁명이다. 생산과 소득 급증과 기술 진보, 소비패턴의 다양화와 같은 현상이 처음 나타난 것도 산업혁명 이후이다. 면직공업과 철강산업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의 특징으로는 코크스를 이용한 저렴한 철강 생산, 증기기관으로 인한 동력의 혁명, 방적기계 개발에 따른 면직물의 대량 생산과 소비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특징만 본다면 산업혁명의 원인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과학의 발전을 원인으로 볼 수도 있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혁신을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영국이었다. 왜 영국이었을까. 산업혁명 직전인 18세기 전반기, 영국이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과학 수준이 앞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산업혁명이 과학적 영감과 이론에 의해 촉발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증기기관은 기원전 1세기 알렉산드리아에도 존재했으나 18세기 영국에서 실용화됐으며, 면방적 기계의 발명도 과학 발전보다는 면직물 수요 증대에 따른 상업적 유인에 대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과학은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됐고 과학자들도 산업혁명 기여자라기보다는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진보의 수혜자로 보는 게 적합하다. 산업혁명을 가져온 진짜 요인은 혁신을 촉발시킨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영국에서 기업가정신이 빠르게 확산됐을까.
영국에서 면직공업이 급속히 발달하게 된 배경을 보자. 먼저 교역 증대가 그 배경에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대서양 연안 국가들로부터 시작된 신대륙과의 교역은 영국 네덜란드에서 신대륙을 포함한 세계 각국과의 활발한 교역으로 이어졌다. 교역이 늘어나자 많은 필수 소비재 가격은 떨어졌고 소득 증대와 함께 18세기 영국에 대규모 소비 계층이 등장했다.
17세기 후반부터 인도 등으로부터 값싼 면직물이 대량 수입되면서 면직물 수요도 급증했다. 기존 모직물 제조업자들의 불만이 폭발해 면직물 수입 및 착용과 사용을 금지하는 캘리코법이 1722년 제정되는 등 보호무역 조치가 행해졌으나 캘리코법을 피해 면직물의 원료인 면화가 수입됐고, 수입된 면화로 기존 영국의 선대제도(先貸制度·상인이 소생산자에게 원료나 도구를 빌려주고 상품을 생산토록 하는 방식)를 이용한 면직물 생산이 늘어났다.
16세기부터 진행된 종획운동(enclosure movement)의 결과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궁핍 상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가 보다 개선된 임금 근로자가 됐다. 이들 근로자는 임금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상품의 중요한 소비자가 됐다. 면직물의 경우 영국 근로자들의 소득이 상승한 반면 가격은 급락해 대량 소비가 시작됐다. 선대제도를 이용한 면직물 생산 증가와 함께 영국 식민지를 비롯한 해외에서의 영국 면직물 수요도 급증했다. 선대제도는 농촌 가내수공업에 기초하고 있어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힘들었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길드시스템에서 벗어나 기업가들이 자유롭게 이윤과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기업가정신의 확산은 재산권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고 생산과 이윤 추구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겨날 수 있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의회 입법권 및 재정에 대한 권한 확립, 보통법체계 수립 및 사법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재산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이 같은 재산권 제도의 확립은 혁신과 효율적 생산을 이끌어냈다. 재산권 강화와 중상주의적 보호주의 쇠퇴 등으로 시장을 통한 이윤창출 기회는 늘어났다. 시장의 팽창과 특허법의 등장으로 기업의 혁신적 경제활동은 크게 촉진됐다. 즉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을 계기로 제도적으로 자본주의적 유인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플라잉셔틀, 스피닝 제니와 같은 직조기 및 방적기 발명·개발이 이뤄졌고 그 같은 혁신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높아져 영국 내 면직공업이 급성장했다.
유럽의 대륙 국가들과 달리 18세기 영국에서는 경쟁을 제한하는 ‘수공업 길드’가 상당히 약화됐다. 따라서 영국 기업가들은 대륙 국가에 비해 투자, 혁신, 생산, 이윤추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농촌 가내수공업에 기초한 선대제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면직공업은 수요가 늘어나자 기업가들이 생산성 향상 필요성을 절감했고 기업가정신이 확산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유인구조 아래에서 혁신이 촉발됐다고 할 수 있다.
면직공업의 생산성 향상은 화학 등 다른 연관산업의 수요 증대를 가져왔고 연관산업도 면직 부문과 같은 혁신의 선순환이 일어났다. 이러한 제조업 발전은 기계 생산을 위한 철강 수요를 촉진시켰고 이는 석탄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면직물 가격 하락은 철강산업 및 광업 발전까지 연결된 셈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한 원인을 해외교역 증가, 소득 증대 등 다양하게 들 수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17세기 후반 명예혁명을 계기로 확립된 제도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과 이윤 추구가 가능한 자유시장, 자유기업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돼 혁신과 효율적 생산의 유인체계로 작용했던 점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다.
산업혁명에 대한 오해…산업혁명이 면직·철강업에만 해당 된다고?
산업혁명은 영국의 경제와 사회를 총체적으로 변화시켰다. 면직공업과 철강공업에서 촉발된 혁신과 기술 진보는 다른 산업들로 확산돼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영국 경제와 사회를 대량 생산과 대중적 소비의 사회로 전환시킨 출발점이었다. 산업혁명에 대한 이런 해석은 산업혁명이 시장친화적인 제도적 여건 아래에서 경쟁과 이윤 추구를 통해 내생적 혁신에 의해 일어났다는 논의에 근거한다.
이런 전통적 시각에 반기를 드는 해석도 있다. 산업혁명을 일부 특정 산업에서의 기술 진보로 보는 것이다. 크래프츠 런던정경대 교수와 할리 옥스퍼드대 교수는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면직공업과 철강산업이라는 신산업에 국한돼 나타났다며, 이외의 산업들은 전근대적인 낙후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 근거는 19세기 전반기 영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과 산업별 기여율에 대한 추정이다.
이들에 따르면 당시 영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는 대부분 면직 및 철강산업의 생산성 증가 덕분이며 다른 산업들은 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내생적 혁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외생적 기술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논리에서 보면 산업혁명이라는 명칭도 부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테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성장률 등 당시 불완전했던 자료 대신 상대적으로 풍부한 교역 데이터를 이용, 19세기 전반 영국은 면직 및 철강산업 이외의 제조업 전반에 걸쳐 비교우위가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특히 면직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에 걸쳐 수출이 꾸준히 증가했음을 교역자료를 통해 확인했는데,이는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생산성 증대를 통한 제품 가격 하락으로 비교우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혁신이 전 산업으로 확산돼 영국이 제조업 전반에 걸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학계에 만연한 실증주의는 경제적 현상이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특히 자료가 부족한 과거의 사례를 분석할 때 이런 위험성은 더 커진다. 산업혁명에 대한 비전통적인 시각은 경제학계에 만연한 실증주의가 역사를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영국이었다. 왜 영국이었을까. 산업혁명 직전인 18세기 전반기, 영국이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과학 수준이 앞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산업혁명이 과학적 영감과 이론에 의해 촉발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증기기관은 기원전 1세기 알렉산드리아에도 존재했으나 18세기 영국에서 실용화됐으며, 면방적 기계의 발명도 과학 발전보다는 면직물 수요 증대에 따른 상업적 유인에 대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과학은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됐고 과학자들도 산업혁명 기여자라기보다는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진보의 수혜자로 보는 게 적합하다. 산업혁명을 가져온 진짜 요인은 혁신을 촉발시킨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영국에서 기업가정신이 빠르게 확산됐을까.
영국에서 면직공업이 급속히 발달하게 된 배경을 보자. 먼저 교역 증대가 그 배경에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대서양 연안 국가들로부터 시작된 신대륙과의 교역은 영국 네덜란드에서 신대륙을 포함한 세계 각국과의 활발한 교역으로 이어졌다. 교역이 늘어나자 많은 필수 소비재 가격은 떨어졌고 소득 증대와 함께 18세기 영국에 대규모 소비 계층이 등장했다.
17세기 후반부터 인도 등으로부터 값싼 면직물이 대량 수입되면서 면직물 수요도 급증했다. 기존 모직물 제조업자들의 불만이 폭발해 면직물 수입 및 착용과 사용을 금지하는 캘리코법이 1722년 제정되는 등 보호무역 조치가 행해졌으나 캘리코법을 피해 면직물의 원료인 면화가 수입됐고, 수입된 면화로 기존 영국의 선대제도(先貸制度·상인이 소생산자에게 원료나 도구를 빌려주고 상품을 생산토록 하는 방식)를 이용한 면직물 생산이 늘어났다.
16세기부터 진행된 종획운동(enclosure movement)의 결과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궁핍 상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가 보다 개선된 임금 근로자가 됐다. 이들 근로자는 임금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상품의 중요한 소비자가 됐다. 면직물의 경우 영국 근로자들의 소득이 상승한 반면 가격은 급락해 대량 소비가 시작됐다. 선대제도를 이용한 면직물 생산 증가와 함께 영국 식민지를 비롯한 해외에서의 영국 면직물 수요도 급증했다. 선대제도는 농촌 가내수공업에 기초하고 있어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힘들었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길드시스템에서 벗어나 기업가들이 자유롭게 이윤과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기업가정신의 확산은 재산권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고 생산과 이윤 추구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겨날 수 있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의회 입법권 및 재정에 대한 권한 확립, 보통법체계 수립 및 사법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재산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이 같은 재산권 제도의 확립은 혁신과 효율적 생산을 이끌어냈다. 재산권 강화와 중상주의적 보호주의 쇠퇴 등으로 시장을 통한 이윤창출 기회는 늘어났다. 시장의 팽창과 특허법의 등장으로 기업의 혁신적 경제활동은 크게 촉진됐다. 즉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을 계기로 제도적으로 자본주의적 유인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플라잉셔틀, 스피닝 제니와 같은 직조기 및 방적기 발명·개발이 이뤄졌고 그 같은 혁신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높아져 영국 내 면직공업이 급성장했다.
유럽의 대륙 국가들과 달리 18세기 영국에서는 경쟁을 제한하는 ‘수공업 길드’가 상당히 약화됐다. 따라서 영국 기업가들은 대륙 국가에 비해 투자, 혁신, 생산, 이윤추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농촌 가내수공업에 기초한 선대제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면직공업은 수요가 늘어나자 기업가들이 생산성 향상 필요성을 절감했고 기업가정신이 확산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유인구조 아래에서 혁신이 촉발됐다고 할 수 있다.
면직공업의 생산성 향상은 화학 등 다른 연관산업의 수요 증대를 가져왔고 연관산업도 면직 부문과 같은 혁신의 선순환이 일어났다. 이러한 제조업 발전은 기계 생산을 위한 철강 수요를 촉진시켰고 이는 석탄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면직물 가격 하락은 철강산업 및 광업 발전까지 연결된 셈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한 원인을 해외교역 증가, 소득 증대 등 다양하게 들 수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17세기 후반 명예혁명을 계기로 확립된 제도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과 이윤 추구가 가능한 자유시장, 자유기업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돼 혁신과 효율적 생산의 유인체계로 작용했던 점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다.
산업혁명에 대한 오해…산업혁명이 면직·철강업에만 해당 된다고?
산업혁명은 영국의 경제와 사회를 총체적으로 변화시켰다. 면직공업과 철강공업에서 촉발된 혁신과 기술 진보는 다른 산업들로 확산돼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영국 경제와 사회를 대량 생산과 대중적 소비의 사회로 전환시킨 출발점이었다. 산업혁명에 대한 이런 해석은 산업혁명이 시장친화적인 제도적 여건 아래에서 경쟁과 이윤 추구를 통해 내생적 혁신에 의해 일어났다는 논의에 근거한다.
이런 전통적 시각에 반기를 드는 해석도 있다. 산업혁명을 일부 특정 산업에서의 기술 진보로 보는 것이다. 크래프츠 런던정경대 교수와 할리 옥스퍼드대 교수는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면직공업과 철강산업이라는 신산업에 국한돼 나타났다며, 이외의 산업들은 전근대적인 낙후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 근거는 19세기 전반기 영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과 산업별 기여율에 대한 추정이다.
이들에 따르면 당시 영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는 대부분 면직 및 철강산업의 생산성 증가 덕분이며 다른 산업들은 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내생적 혁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외생적 기술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논리에서 보면 산업혁명이라는 명칭도 부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테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성장률 등 당시 불완전했던 자료 대신 상대적으로 풍부한 교역 데이터를 이용, 19세기 전반 영국은 면직 및 철강산업 이외의 제조업 전반에 걸쳐 비교우위가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특히 면직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에 걸쳐 수출이 꾸준히 증가했음을 교역자료를 통해 확인했는데,이는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생산성 증대를 통한 제품 가격 하락으로 비교우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혁신이 전 산업으로 확산돼 영국이 제조업 전반에 걸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학계에 만연한 실증주의는 경제적 현상이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특히 자료가 부족한 과거의 사례를 분석할 때 이런 위험성은 더 커진다. 산업혁명에 대한 비전통적인 시각은 경제학계에 만연한 실증주의가 역사를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