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제적 기업구조조정, 시장에 힘을 줘라
최근의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결과는 기업경영환경이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매출 증가율이 2011년 12.2%에서 2012년 5.1%, 2013년 2.1%로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대기업은 더욱 심각해 2011년 13.1%에서 2012년 5.0%, 2013년 0.3%로 급락했다. 2013년 대기업 매출 증가율 0.3%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의 0.7%보다도 더 악화된 수치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이 31.3%로 기업 3개 중 하나는 이자도 못 내는 실정이다. 기업 4개 중 하나는 아예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라는 충격적인 보고다.

올 상반기 실적은 더 참담하다. 전자, 조선,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 전 업종에서 매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반전되거나 영업이익이 급락하는 어닝쇼크가 일어나고 있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는 내년에 금리가 연 2%포인트 오르거나 기업수익성이 30% 악화되면 기업 30%가 도산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제조업은 ‘퍼펙트 스톰’ 와중에 들어섰다. 이런데도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은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느니,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도 올리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와 같은 기업수익 악화로 내년도 한국 경제는 기업구조조정이 큰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은 사전에 신속하게 해야 은행부실과 국민경제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업수익 악화가 예상되면 해당기업 재무상태를 점검해서 일시적 유동성 위기인지 구조적으로 지급불능 상태인지를 판단해서 구조조정으로 살릴 것인지 청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구조조정으로 살려야겠다는 판단이 내려진 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과 더불어 채무재조정과 추가지원을 통해 기업을 살리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손실은 소유주, 경영진, 은행이 손실분담의 원칙에 따라 분담한다.

구조조정 방식에는 자율협약, 워크아웃, 법정관리 세 가지가 있다. 자율협약은 일시적 유동성위기기업, 워크아웃은 부실징후기업, 법정관리는 부실기업에 시행한다. 최근 구조조정 동향을 보면 동양그룹 5개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는데 기존관리인유지제도(DIP)에 따라 기존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반면 STX조선해양과 동부제철은 자율협약에 들어갔는데 대주주 주식을 100 대 1로 감자해 경영권을 박탈했다.

자율협약이 법정관리보다 더 무거운 경영권 박탈이라는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형평성 문제와 재산권침해 논란이 대두되고 있다. 심지어 구조조정을 추진한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이라서 관치 구조조정이 아니냐는 오해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별 구조조정 방식이 적합했느냐는 논의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내년에는 기업경영환경이 더 악화돼 기업구조조정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많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경영권이 박탈될지도 모를 자율협약을 기피하고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갈 때까지 구조조정을 지연해 금융회사와 국민경제 손실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형평성 문제, 재산권 침해, 관치 구조조정 논란을 피하면서 적시에 사전 구조조정으로 금융회사와 국민경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시장기반 구조조정이 있다. 인수합병(M&A) 시장, 사모펀드 시장,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이용한 구조조정과 기업을 건전사업부문과 부진사업부문으로 분할해 구조조정을 하는 방식이다. M&A시장과 사모펀드시장 활성화 및 원활한 기업분할을 위해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SPAC 활성화를 위해 최소자본금 요건을 완화하는 등 사전적 시장기반 구조조정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韓經硏 초빙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