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간 경영학 초보의 좌충우돌 분투기
미국의 한 경영전문대학원(MBA) 강의실. 학생들이 홍콩에 본사를 둔 ‘리앤펑’이란 회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소매업체나 제조업체들의 공급망을 관리한다. 생산시설이 전무한 회사에 디자인과 원료 조달, 생산, 품질관리 등을 다른 곳에 맡겨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한다.

토론이 끝나갈 무렵, 강의실의 프로젝터 스크린이 내려오더니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빅터 펑이 나타났다. 학생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중국 하이난에 있는 그가 위성중계를 통해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학생들은 세계 공급망이 어떻게 분화돼 있는지, 어떻게 고객이 안갯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펑이 학생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주며 수업이 마무리됐다. 이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진행된 한 경영전략 강의 현장 모습이다.

《하버드 경영학 수업》은 기자 출신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한 대학원생의 2년에 걸친 분투기를 담았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로마시대 고전을 공부하고,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10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MBA 과정을 밟기로 결심한다. 그는 워드프로그램 말고는 파워포인트나 엑셀을 다뤄본 적도 없었다. 기회비용의 개념조차 모를 만큼 경영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휴가차 MBA 학위를 따러 온 비즈니스 엘리트 동기생들 사이에서 하나둘씩 배워나간다.

저자는 수업시간에 교수가 학생을 지명해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콜드 콜(cold call)’, 날 선 토론과 때로는 악의적인 조롱이 난무하는 수업 현장 등의 풍경을 묘사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교수나 마이클 포터 교수 같은 경영학 대가의 명강의를 들으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워런 버핏 등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방문한 명사와 기업체 리더들의 특강을 듣는 행운도 누린다. 쏟아지는 리포트 숙제와 조별 과제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경영학 초보였던 저자는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배우며 숫자로 생각하고, 기업과 세상을 경영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멀미가 날 것 같은 숫자들의 향연을 보며 회계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간다. 월스트리트 증권가가 좋아하는 분기별로 매끄럽고 고른 성장세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이 어떻게 회계의 맹점을 이용하는지를 알고 분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세속적 욕망과 인생의 이상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사람들도 많이 배출했다. 1980년대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들이 월스트리트 내부자 거래에 연루되자, 당시 증권거래위원회는 이 학교에 윤리학 강좌를 신설하도록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버드 졸업생인 제프 스킬링이 설립한 엔론은 사상 최대 회계부정으로 파산했다. 엔론 내부에는 수십 명의 하버드 MBA 출신이 있었다. 그는 비즈니스가 기괴한 쇼로 변질됐다는 확신과 사례 학습을 통해 기업가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저자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지만 번번이 떨어진다. 마지막엔 채용 제안을 받지 못한 유일한 학생이 된다. 하지만 저자가 자본주의의 뜨거운 도가니에서 보낸 2년의 경험은 오히려 그가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았다. 자신이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계속 찾는다면, 머지않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