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1세기 과학의 갈림길 ..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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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순 < 포항공대 교수 / 과학사 >
1990년대에 과학계의 판도를 바꾼 가장 커다란 사건은 무엇일까.
21세기 사람들은 소립자 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초전도충돌형가속기(SSC: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계획이 폐기되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려고 하는 인간게놈계획(Human Genome Project)이 추진된 것을 들게 될
것이다.
이 두 계획은 각각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와 분자생물학 분야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모두 다 엄청난 연구비와 수많은 연구 인력이 투여되는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에 해당하는 계획이었다.
SSC 건설계획에는 10여년에 걸쳐 약 60억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됐다.
인간게놈계획도 전체적으로는 이에 맞먹는 비용이 들 예정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계획의 성사 여부에 따라 자기 분야의 사활이 걸렸으므로
정치적 로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SSC 프로젝트 당사자들은 이 계획이 우주와 물질의 신비를 해명할 뿐더러
거대한 장치를 만들기 위한 첨단기술 개발로 고체물리를 비롯한 여타 공학
분야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가들을 설득했다.
또한 인간게놈계획 당사자들은 30억개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약 10만개의
유전체에 관한 유전자 지도를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이 연구가 완료되면
불치병인 암의 치료와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정책 관계자들에게 호소했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 SSC 건설계획은 지난 93년에 폐기된 반면 인간게놈계획
은 살아남았다.
91년부터 추진된 인간게놈계획은 현재 15년으로 돼 있는 일정을 몇년 앞당겨
마칠 예정이다.
SSC 건설계획이 폐기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90년대 들어 미.소 냉전 체제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정부는 국가안보와 연관해서 고에너지 물리학을
지원했는데 그 명분이 사라졌던 것이다.
또한 6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에 들어와 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급성장했던
고체물리학자 집단이 고에너지 물리학자 집단의 독주를 좌시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
반면에 인간게놈계획이 살아남은 이유는 해당 분야의 과학자들이 이 계획이
신약개발 및 난치병 치료와 같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곳에서 도움이 되며,
21세기 생명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 계획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잘 설득시켰기 때문이었다.
또한 인간게놈계획에서는 과학연구와 연관된 생명윤리 문제에도 전체 예산의
3~5%를 배정하는 등 과학과 사회문제에도 세심한 관심을 보였다.
이제는 각 유전체의 구조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알아내는
더욱 방대한 연구를 추진하려는 야심에 찬 계획으로 발전하고 있다.
SSC 계획의 몰락과 인간게놈계획의 성공의 예는 21세기 과학계에 나타날
커다란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21세기에는 고에너지 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환원주의적이고 통일적인
과학이 퇴조할 것이다.
대신 응집현상 생명현상 복잡계현상 등을 다루는 통합적인 과학이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이다.
아울러 물리과학 내에서도 단순히 물질의 궁극적인 원리를 탐구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던 분야보다도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에 더욱
잘 부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변신하는 과학분야가 각광받게 될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소립자 물리학이나 고에너지 물리학이 과학계를 주도했던
것은 전후 냉전 체제와 미.소간의 무기 경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탈냉전 시대가 펼쳐질 21세기에는 과거처럼 군사력 우위로
세계를 통제하려는 방식보다는 반도체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21세기에 우리
삶의 핵심을 차지할 첨단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
이 본격화될 것이다.
우선 물질이나 기계를 분자 혹은 원자의 크기로 만드는 신기술인 나노테크
놀로지 역시 우리의 미래를 바꿀 21세기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 나노튜브로 된 반도체 소자가 개발되면 완전히 혁명적인 새로운 전자
장치를 만들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초전도체, 형상기억합금, 기능성 재료, 수소저장 합금같은 물질
들도 현재 과학기술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미래의 신물질 후보들이다.
20세기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물리과학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유전자에 의해 대변되는 생명과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측하고 있다.
90년대초에 있었던 SSC 계획과 인간게놈계획에 얽힌 희비의 이야기는 이런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갈림길이 됐던 것이다.
< gsim@postech.ac.kr >
-----------------------------------------------------------------------
<> 필자 약력
=<>서울대 물리학과
<>독일 함부르크대 자연과학 박사
<>저서:20세기 과학의 쟁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4일자 ).
1990년대에 과학계의 판도를 바꾼 가장 커다란 사건은 무엇일까.
21세기 사람들은 소립자 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초전도충돌형가속기(SSC: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계획이 폐기되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려고 하는 인간게놈계획(Human Genome Project)이 추진된 것을 들게 될
것이다.
이 두 계획은 각각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와 분자생물학 분야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모두 다 엄청난 연구비와 수많은 연구 인력이 투여되는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에 해당하는 계획이었다.
SSC 건설계획에는 10여년에 걸쳐 약 60억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됐다.
인간게놈계획도 전체적으로는 이에 맞먹는 비용이 들 예정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계획의 성사 여부에 따라 자기 분야의 사활이 걸렸으므로
정치적 로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SSC 프로젝트 당사자들은 이 계획이 우주와 물질의 신비를 해명할 뿐더러
거대한 장치를 만들기 위한 첨단기술 개발로 고체물리를 비롯한 여타 공학
분야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가들을 설득했다.
또한 인간게놈계획 당사자들은 30억개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약 10만개의
유전체에 관한 유전자 지도를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이 연구가 완료되면
불치병인 암의 치료와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정책 관계자들에게 호소했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 SSC 건설계획은 지난 93년에 폐기된 반면 인간게놈계획
은 살아남았다.
91년부터 추진된 인간게놈계획은 현재 15년으로 돼 있는 일정을 몇년 앞당겨
마칠 예정이다.
SSC 건설계획이 폐기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90년대 들어 미.소 냉전 체제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정부는 국가안보와 연관해서 고에너지 물리학을
지원했는데 그 명분이 사라졌던 것이다.
또한 6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에 들어와 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급성장했던
고체물리학자 집단이 고에너지 물리학자 집단의 독주를 좌시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
반면에 인간게놈계획이 살아남은 이유는 해당 분야의 과학자들이 이 계획이
신약개발 및 난치병 치료와 같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곳에서 도움이 되며,
21세기 생명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 계획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잘 설득시켰기 때문이었다.
또한 인간게놈계획에서는 과학연구와 연관된 생명윤리 문제에도 전체 예산의
3~5%를 배정하는 등 과학과 사회문제에도 세심한 관심을 보였다.
이제는 각 유전체의 구조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알아내는
더욱 방대한 연구를 추진하려는 야심에 찬 계획으로 발전하고 있다.
SSC 계획의 몰락과 인간게놈계획의 성공의 예는 21세기 과학계에 나타날
커다란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21세기에는 고에너지 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환원주의적이고 통일적인
과학이 퇴조할 것이다.
대신 응집현상 생명현상 복잡계현상 등을 다루는 통합적인 과학이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이다.
아울러 물리과학 내에서도 단순히 물질의 궁극적인 원리를 탐구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던 분야보다도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에 더욱
잘 부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변신하는 과학분야가 각광받게 될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소립자 물리학이나 고에너지 물리학이 과학계를 주도했던
것은 전후 냉전 체제와 미.소간의 무기 경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탈냉전 시대가 펼쳐질 21세기에는 과거처럼 군사력 우위로
세계를 통제하려는 방식보다는 반도체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21세기에 우리
삶의 핵심을 차지할 첨단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
이 본격화될 것이다.
우선 물질이나 기계를 분자 혹은 원자의 크기로 만드는 신기술인 나노테크
놀로지 역시 우리의 미래를 바꿀 21세기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 나노튜브로 된 반도체 소자가 개발되면 완전히 혁명적인 새로운 전자
장치를 만들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초전도체, 형상기억합금, 기능성 재료, 수소저장 합금같은 물질
들도 현재 과학기술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미래의 신물질 후보들이다.
20세기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물리과학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유전자에 의해 대변되는 생명과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측하고 있다.
90년대초에 있었던 SSC 계획과 인간게놈계획에 얽힌 희비의 이야기는 이런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갈림길이 됐던 것이다.
< gsim@postech.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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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물리학과
<>독일 함부르크대 자연과학 박사
<>저서:20세기 과학의 쟁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