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촌동에 있는 공기청정기업체인 청풍 본사 2층 직영팀.지난달 초부터 '직영팀원'이 된 최윤정 사장(32)이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직접 커피를 타서 팀 동료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라는 말을 건네며 담소를 나눈 뒤 최 사장은 업무에 들어간다. 우선 e메일을 통해 전자결재를 하고 회사경영 전반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하는 등 최고경영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한 뒤 바로 직영팀 업무에 들어간다. 직영팀원 4명과 업무회의를 하고 대리점 주인들을 만나러 가거나 대리점을 새로 개설할 지역들을 돌아보기도 한다. 청풍에는 사장실이 따로 없다. 창업주인 최진순 회장(64)의 딸인 최 사장은 지난 2002년 초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e비즈니스팀,마케팅팀 등 실무부서에서 일해 왔다. 최 사장은 '사장'보다는 '실장'이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을 더 많이 들고 다닌다. 마케팅 영업 등 직접 실무를 뛰는 일이 많다 보니 실장이라는 직함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그때그때마다 가장 취약하거나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부서를 옮겨다니며 일해 왔다"며 "지난달부터는 대리점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직영팀에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처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이지만 '실장'이나 '과장'의 명함을 들고 현장을 누비는 젊은 2세 경영인들이 많다. 사내에서는 어엿한 대표이사지만 현장에서 뛸 때는 실장이나 과장 같은 실무형 직급이 업무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안정호 시몬스침대 대표(33)는 정식 직함이 '대표이사 기획실장'이다.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 설립자인 안유수 회장의 차남인 안 대표는 99%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너로서 지난 2001년 대표이사로 취임했지만 1998년 입사 당시의 '기획실장'이란 직급을 고집하고 있다. 안 대표는 입사 이후 '단순함이 바로 아름다움(Simple is Beautiful)'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정착시켰으며 현재도 제품 기획과 개발 등의 실무를 도맡아하고 있다. 안 대표는 "상대가 직원이든 거래처든 고객이든 사장보다는 실장으로서 터놓고 얘기하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비닐제조업체인 케이아이피의 김정태 사장(30)은 '과장'이란 명함을 들고 다닌다. 거래처나 사내에서도 그를 스스럼없이 '김과장'이라고 부른다. 김 사장은 경일화학 김진명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 2001년 10월 대표이사에 올랐지만 '과장' 명함을 고수하고 있다. 김 사장은 "사장이라 불리는 게 여전히 낯선 데다 나이든 거래처 사람들에게 젊은이가 불쑥 사장 명함을 내밀면 당혹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실제 업무를 할 때도 과장의 마인드를 갖고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