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특히 (영화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특히 애착이 있었나 봐요. 한동안 가희로 살았으니…."


29일 개봉하는 주홍글씨는 24살의 '젊은' 여배우 이은주에게 꽤나 중요한 영화로 남을 것 같다.


전라로 등장하는 정사신의 파격이나 화제가 됐던 트렁크 장면의 육체적 어려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는 모호한 캐릭터이지만, 이은주가 연기하는 '가희'는 욕망과 열정, 슬픔과 좌절이라는 간단치 않은 옷을 입은 채 스크린 속에 살아 있는 인물처럼 또렷해졌다.


26일 영화의 개봉을 3일 앞두고 만난 이은주는 스크린에서 막 걸어나온 듯 보이는 가희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화 속의 슬픔에서 미처 헤어나오지 못한 듯, 한층 야위어 보이는 얼굴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동안 제가 해본 어떤 캐릭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었어요. 영화를 끝내고 나니 부쩍 성숙해진 느낌이 들어요. 힘든 만큼 많이 배운영화죠."



▲'주홍글씨'는 끌리면서도 망설였던 영화


그가 출연작을 고르는 기준은 시나리오를 본 다음의 느낌이다.


'주홍글씨'의 경우는 끌림이 특히 강한 작품.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했던 역할과 너무 다르다는 게 부담이었어요. 다른 영화의 여성 캐릭터와도 다른 점이 많잖아요. 신중하게 한참을 고민한 뒤에 어렵게 결정을 했어요."


우려했던 것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촬영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트렁크 속에 갇혀 한석규와 함께 절규하는 장면은 '지옥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몇몇 부담스러웠을 법한 장면은 의외로 담담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가희의 감정을 갖게 된 덕분이다.


"참 이상해요. 남들은 힘들었다고 할 만한 장면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그냥 순간순간에는 영화 속의 가희처럼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셈이죠."



▲한석규는 선한 사람


이은주는 스스로 인복이 많은 배우라고 했다.


그동안 영화 아홉 편을 찍으면서 함께 일한 사람들이 싫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주홍글씨'의 변혁 감독이나 한석규에 대해서도 칭찬을 늘어놨다.


처음 호흡을 맞춘 한석규에 대한 느낌은 "선한 사람"이라는 것.


변혁 감독에 대해서는 "특이한 감독"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석규 선배는 인간적으로 본받을 게 많은 사람이에요.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게 사람이 선(善)해서 그런 거죠. 변혁 감독은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생각자체가 한국적이지 않아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도 쿨(Cool)하죠."


변혁 감독은 전작 '인터뷰'를 보고 반했다고.


"감독의 영화 중 최근 단편 '호모비디오쿠스'를 보고는 단편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수다보다는 여행이 좋다


"어젯 저녁에 집앞 공원에 나가봤더니 단풍이 무척 예쁘게 들었더라고요. 꼭 꿈속같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등산을 너무 좋아해요. 지금 설악산이나 제주도나 한창 좋을 때죠".


"수다를 떠는 것보다는 여행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이은주는 "한동안 바빠서 여행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모두 9편의 출연 영화 중 절반 가량은 최근 2년 간에 몰려 있다.


TV 드라마 '불새'에도 출연했으니 한동안 쉼없이 일을 해온 셈.


오래간만에 생긴 휴식 기간에 "실컷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몇년간 처음으로 쉬는 시간을 갖는 것 같다"며 웃는 그는 '주홍글씨'의 촬영을 끝낸 뒤 어머니와 함께 떠났던 중국 여행 얘기를 들려주며 "다음 작품이 결정되기전까지 다시 어머니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전에 홍콩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 대륙으로 건너갔거든요. 국경을 지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무척 재미있었어요.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죠".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