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지난 연말 우리는 황우석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특정 분야에 올인하는 정부주도의 과학기술 투자 정책이 가져 올 수 있는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많은 과학자들은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이런 값비싼 경험을 통해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정책이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후 제시되고 있는 연구지원 정책들은 정부의 졸속(拙速) 업적주의와 맞물리면서 이전보다도 더 단발적인 응용 가능성에 집중되고 있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거꾸로 가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정책은 근본적으로 정책입안자들이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 BT, IT, NT 등 과기부에서 신성장 동력이라고 제시한 각 분야의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때문으로 생각된다.

과학과 기술은 한마디로 '과학은 돈을 넣어 지식을 만드는 과정이고, 기술은 지식을 이용해 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란 말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연구개발정책은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지식이 축적(蓄積)되는 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즉 기술정책만 있을 뿐 과학정책은 없는 것이다. 과학자들에게 2~3년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응용가능성이 있는 시제품이나 기술이전이 가능한 특허를 만들어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만일 지식의 축적 없이, 즉 투자가 필요한 과학의 발전 없이도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기술 발전이 가능하다면 경제적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문제는 축적된 과학지식의 기반 없이는 장기적으로 기술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과학은 대부분 실험학문이므로 연구비 없이는 단순한 연구도 진행하기 힘들다. 또 이는 자연현상에 대한 지식의 탐구과정이므로 1~2년의 연구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축적되지도 않는다. 어떤 연구가 미래에 어떤 파급(波及) 효과를 가져 올지 예상할 수 없는 특성도 있다. 그러나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과학의 다양한 연구에 꾸준히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탄탄한 지식 축적을 위한 과학의 육성이 기술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단기적 응용성 위주의 연구지원 정책 하에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연구비가 필요한 과학의 특성상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기대효과나 응용가능성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같은 현실을 자조해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다가 10년쯤 후에는 과학자가 사기꾼과 동일한 단어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BT분야만 보아도 21세기 유망(有望) 분야로 BT쪽으로 투자를 시작했던 대기업들이 지난 5~10년간의 투자 이후 눈에 띄는 이윤창출 응용가능성이 드러나지 않자 투자를 중단한 사실은 단시간 내에 응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도 달성하기 어려운 응용성과를 단기간 내에 대학이나 연구소의 과학자들에게 요구한다면 연구가 정직하게 이뤄질 수 있겠는가.

지식의 축적 과정에 대한 기다림 없이 단기간에 당장 돈이 되는 기술 개발을 요구하는 현재의 과학기술정책이 계속될 때, 단기적으로 학문적 부실이 양산(量産)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에도 투자만큼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정책의 오류는 결국 국가 지식기반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고 그 대가는 혈세로 연구비를 지원한 국민들이 치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축적된 과학의 지식기반 없이 궁극적인 원천기술개발은 불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