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여자 프로배구 MVP 김연경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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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2000득점은 탄탄한 리시브에서 나왔죠"
'프로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일을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날에 하는 것을 의미한다. '
2005년 프로배구에 막 입문한 열일곱 살의 소녀는 미국 농구선수 줄리어스 어빙의 말을 자신의 미니홈피(www.cyworld.com/k4017229)에 썼다. 그로부터 4년간 그는 겨울 정규리그 중에 있는 생일(2월28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걸 포기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한 달 2000여통의 문자메시지로 대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구에 쏟아넣었다.
이후 네 차례 시즌을 치르는 동안 정규리그 MVP에 세 번 올랐고 여자 배구선수로는 사상 처음 2000득점을 돌파했다. 지난달 열린 결승 토너먼트에선 소속팀(흥국생명)을 정상에 올려놓고 챔피언 결정전 MVP에 등극했고,일본 팀과 맞붙은 '한 · 일 V리그 탑매치'에서도 MVP에 올랐다.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와 한 · 일전에서 기록한 그녀의 득점은 33점과 31점.25점씩 세 세트를 먼저 따면 이기는 배구경기에서 팀 득점의 절반을 혼자 해냈다.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프로배구 선수 김연경(21 · 흥국생명)은 벌써 한국이 좁다. 국내 리그에서 뛰는 것은 지난 시즌이 끝으로,현재 일본 이탈리아 등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를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본관에서 만났다. 취미가 수다떨기,특기가 말하기라는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인 동시에 아직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은 젊은 아가씨였다.
▼2000득점 돌파를 축하합니다. 많은 득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이번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볼입니다. 제가 낸 마지막 점수로 우승했거든요. 이번 시즌 들어 많이 힘들었어요. 감독님도 두 번 바뀌고 동료 선수들도 잦은 부상 때문에 힘든 시즌을 보냈죠.중 · 고교 시절부터 우승만 했는데 소속팀이 정규리그 3위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죠.눈물도 많이 흘렸고 그래서 우승이 더욱 값졌지요. "(올 시즌 흥국생명은 팀을 이끌던 황연주 감독의 석연치 않은 퇴진에 따른 리더십 위기와 황연주,전민정 선수 등 주전들의 부상으로 힘든 경기를 치렀고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우승했다. )
▼우승 직후 동료들과 함께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sorry,sorry)' 춤을 췄잖아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건가요.
"어떤 경기든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을 갖고 들어가요.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에서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득점했을 때나 이겼을 때 멋있는 세리머니는 미리 준비하나요.
"중요한 경기는 미리 어떤 세리머니를 할지 생각하고 들어갑니다.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죠.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이 많을수록 더 많은 걸 보여드리려고 해요. "
▼득점 경로가 다채로운데 특별히 선호하는 득점 방법이 있어요.
"'다이렉트(Direct)'라고 아세요? 이쪽에서 서브한 공을 상대가 받아서 네트 가까이로 보냈을 때 상대 공격수의 손이 닿기 전에 다시 상대 진영으로 꽂아넣는 기술이요. 다이렉트를 때렸을 때 가장 짜릿하죠.(배구 기술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김 선수의 눈이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훈련은 오전,오후에 각각 2시간 내지 2시간30분 정도 기초체력 운동과 기술운동을 해요. "
▼다른 선수보다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리시브 연습이죠.일단 수비가 잘 돼야 좋은 공격으로 연결될 수 있거든요. 동료 선수들이 공격하는 걸 받는 것 외에 코치들과 따로 연습을 해요. 기술연습 시간의 절반 정도인 한 시간 이상을 여기에 할애하죠."(경기마다 많은 득점을 올리며 공격에 능한 그가 수비 연습에 집중한다는 것은 의외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빈 틈을 체계적인 노력으로 메우는 의지가 돋보였다. )
▼흥국생명 배구단은 달리기를 중요시하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매일 실내코트를 40바퀴 돌고 400m 트랙도 20바퀴 뜁니다. 팀 전체가 정해진 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하면 다시 뛰어야 하므로 이를 악물고 뛰죠.100m를 지칠 때까지 전력질주로 오가는 '셔틀 런'은 10분30초 정도까지 뛸 수 있는데 키가 커서 기록은 다른 선수들보다 못해요. "
▼경기에서 컨디션이 안 좋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까.
"공격하는 선수는 상대의 블로킹을 보고 그걸 피해서 공격하는데 이 블로킹이 유독 눈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있어요. 그래도 일단 뛰어 오른 상태에선 공격을 할 수밖에 없어 그대로 때리면 평소보다 자주 블로킹에 걸려요. "
▼배구선수로서 좌절한 경험이나 시련도 있었나요.
"중학교 때 가장 힘들었어요. 실력이 원하는 만큼 빨리 늘지 않는 데다 키도 작아서 출전 기회가 적었거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운동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으니 운동선수로서는 가장 큰 위기였죠.하지만 그때 가장 키 작은 선수가 맡는 리베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리시브를 많이 연습한 게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고등학교 입학 당시 170㎝로 배구선수로는 작았던 김 선수의 키는 계속 성장해 고교 졸업 무렵에는 185㎝까지 컸다. 프로 데뷔 이후에도 4년간 7㎝가 더 자랐다. 하지만 그는 중 · 고교 때 리베로로 뛴 덕분에 리시브가 불안한 여느 장신 선수들에 비해 약점이 적다.
▼지난해 이맘 때쯤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던 걸로 아는데요.
"프로 데뷔 이후 무릎 부상 때문에 매년 수술을 했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수술을 하고 나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든요. 침대에 누워 경기장에서 뛰고 구르던 때를 떠올리고 있으면 스스로 한심해져요. 수술이 끝나고 재활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발도 들기 힘든데 그럴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죠.다행히 올해는 수술이 없을 것 같아요. "
▼지치고 힘들 때는 뭐가 도움이 되나요.
"휴대폰이죠.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많이 하다 보니 없으면 불안할 정도예요. 시즌이 끝난 지금은 덜하지만 외박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즌 중에는 숙소에 들어가면 놀거리가 휴대폰과 컴퓨터밖에 없어요. 특히 친구들과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는 한 달에 2000통도 넘어요. "
▼짜여진 생활을 하다 보면 답답할 것 같은데 또래 여성들이 부럽지 않나요.
"제가 좋아하는 배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게 많은 만큼 다른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아요. 딱 하나 부러운 게 있다면 또래 친구들의 '평범한' 키예요. 이런 저런 예쁜 옷을 많이 입을 수 있잖아요. 액세서리나 아기자기한 것도 많이 걸칠 수 있고요. 하지만 보통 여성 옷을 제가 입으면 소매가 팔꿈치까지 올라와요. 그래서 남성복 가운데 여성스러운 걸 찾아 입거나 특별히 큰 옷을 구해 입어요. "(그는 배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자신의 키가 168~170㎝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평소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해요.
"지금은 배구에 집중할 때예요. 해외 진출을 늘 꿈꿨는데 막상 현실화한다니 잘 안 믿겨지기도 해요. 중요한 문제를 앞두고 있는 만큼 당분간 연애는 없을 겁니다. "
▼영화배우 조인성씨와 박지성 선수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요.
"박지성 선수는 좋아한다기보다는 운동선수로서 닮고 싶은 역할 모델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어요. 저는 동작이 크고 좀 덤벙거려서 건방지다거나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데 박지성 선수는 그런 말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을 거예요. 그런 인격도 배우고 싶어요. 남자 키는 조인성씨 정도면 딱 좋아요. "(조씨의 키는 김연경보다 6㎝ 작은 186㎝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배구' 하면 김연경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같은 선수끼리 봤을 때 '저 선수는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는,운동만이 아니라 인격까지 갖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
▼배구를 하지 않았으면 뭘 했을 것 같아요.
"종목이 무엇이든 운동선수가 됐을 거예요. 운동이 너무 좋거든요. 축구를 좋아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즐겨 보는 걸 보면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
글=노경목/사진=정동헌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