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2. 대학생 이 모씨(22·여)는 6월 초 겨드랑이 부문에 '비트 인샤워 제모크림'(건성피부용)을 바른 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갑고 피부가 부풀어 올랐다. 제품을 겨드랑이에 바르는 순간 너무 따끔해 바로 씻어냈지만 피부가 두꺼비 등처럼 올록볼록 올라왔다. 그는 운동을 하고나면 아직도 겨드랑이 주변의 땀구멍이 빨갛게 일어난다고 했다. 당장 병원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기말시험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은 자국이 까맣게 남아 '때'처럼 지저분하게 보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례3. 지난 5월 약 30만 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한 네이버 뷰티 커뮤니티 '카페 파우더룸'에 '비트 라세라 블레이드리스 킷'에 대한 불평이 올라왔다. 아이디 'anotherjm'은 크림을 3분간 바르고 면도용구로 제거한 뒤 물에 씻고 나니 양쪽 팔이 울긋불긋 해져 있었다며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사진 속 이 소비자의 팔꿈치는 눈에 확연히 띌만큼 붉은 반점들이 나 있었다. 이 소비자는 "자세히 보니 팔 군데군데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출의 계절' 여름이 시작되면서 피부미용을 위해 팔뚝이나 겨드랑이, 다리 등에 나 있는 털을 제거하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일부 제모제에서 부작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3일 올들어 제모크림 등 제모제를 사용한 뒤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의 환불 및 치료비 보상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20대 여성 나 모씨는 '비트' 제모크림을 바른 뒤 살갗이 벗겨져 연고를 발랐지만 오히려 색소침착(피부색깔이 검게 편하는 현상)이 돼 피부과에 가야만 했다. 결국 이 여성은 피부과 병원에서 레이저 시술이나 6개월 동안 약을 발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 씨가 제모크림에 사용한 비용은 1만원 안팎.하지만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납부한 진료비는 이보다 최소 10배 이상이 들 수밖에 없다. 레이저 시술비용으로 최소한 15만~20만원이 들기 때문이다. 나 씨는 판매업체인 옥시 측으로부터 치료비는 보험처리로 보상해 줄수는 있으나, 그 외 위자료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카페 파우더룸'에서 제모제 '비트'의 문제점을 제기했던 소비자는 "옥시에 전화를 했더니 '태양에 자극을 받아서 그럴 수 있으니 피부과에 다녀오라'는 엉뚱한 대답을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옥시 측에서 "다른 제품들도 많으니 세제 등으로 교환해 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옥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방치하면 병세가 심해질 수 있어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유한 것일 뿐"이라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소비자가 구입한 제모크림은 전량 수거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소비자가 진단서와 이상부위를 사진 보내주면 우리 제품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판단될 경우 치료비와 구매금액 전액을 환불해 주고 있다"고 말해 제품에 일부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소비자원에 고발된 '위자료' 건과 관련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부인했다.
옥시 고객센터에도 이같은 부작용으로 인한 고객들의 환불요구와 불만접수가 잇따르고 있다. 옥시측은 "주로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부작용에 관한 환불 및 불평사항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는 "제품 설명서에서는 사용 전에 반드시 시험사용을 해보고 24시간 이후 이상이 없을 때에 사용을 권하고 있다"며 "부작용 피해자 대부분이 설명서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모제 '비트'는 국내 제모크림 중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상태다. 실제 국내에서는 비트에 견줄만한 경쟁상품이 거의 없어 시장조사 전문기관조차 별도로 시장점유율 조사를 하지 않을 정도다.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공무원 김 씨는 "대형마트에서 비트 제모크림을 구입했는데, 비트 외에는 제모크림이 전무하다시피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TV에서 제품 소개 광고를 보고 구입했는데 꼭 속은 느낌이고 직장때문에 여유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이 제품은 현재 프랑스에서 전량 생산된 것을 옥시가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제모크림의 원리는 털을 깎는 것이 아니라 설파이드나 글리콜레이트 등의 화학성분으로 털을 녹이는 방식이다. 이 화학성분은 털의 주성분인 케라틴을 녹이는 역할을 하지만 케라틴으로 구성돼 있는 피부 각질층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피부에 맞게 고안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옥시 관계자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이어서 한국인 피부에 맞춰 생산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국인 피부에 대한 연구는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몇 해 전부터 '비트'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의 제모크림에 관한 소비자 피해상담 접수가 더러 있었다"며 "다만 비트가 워낙 시장 독점적인 제품이다보니 피해 사례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람마다 피부 유형이 모두 다른 만큼 제모크림을 사용할 때는 꼭 자신의 피부 타입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고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고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름다운나라 병원 피부과 전문의 류지호 원장은 "제모 크림을 장시간 바르고 있으면 피부가 약해질뿐만 아니라 자극이 심하고 발진이 생기는 접촉 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모 크림은 비교적 강한 화학성분이 들어있어 자주 그리고 오래 사용하면 피부에 좋지 않다"며 "비키니 라인 같은 민감한 부위와 상처나 염증이 있는 부위는 사용을 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김은영 기자 mellis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