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근로시간면제위원회 위원장(54)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전화가 너무 자주 걸려와 인터뷰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날(6일) 밤 늦게까지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결과를 궁금해 하는 정부와 재계 노동계 학계 언론계 관계자들의 전화인 듯 했다. 요즘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인 그를 지난 7일 어렵게 만났다. 노동계가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 회사로 부터 유급인정을 받는 노조활동) 한도에 반대하고 국회 환노위가 재논의를 거론하는 미묘한 시점이어서 조심스러운 탓도 있었다. 좀 쉬고 싶다는 그를 한국경제신문까지 불러 냈다.

▼타임오프 최종안이 나왔다. 그동안 몇차례 회의를 했나.

"근면위안이 최종 결정된 지난달 30일까지 16차례 회의를 열었다. 마지막 날엔 자정을 넘겨 논의를 했고 결국 1일 새벽 3시께 합의안이 도출됐다. 오는 7월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는데 타임오프제가 전임자 임금 금지의 연착륙 대안이 되길 바란다. "

▼난산이었다. 타임오프 결정에 대해 평가해달라.

"노사 간 요구사항을 잘 절충해 균형을 잡았다고 본다. 근면위 전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석해 준 덕분이다. 표결에는 노동계쪽이 불참했지만 논의과정은 다 참여했다. 노사 합의안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

▼타임오프가 시행되면 전임자 수가 대폭 줄어든다며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선진국 노조들도 전임자를 요구하며 반발하는 경우가 있나.

"선진국에서는 노조가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이것이 갈등의 쟁점이 된 적은 없다. 우리 노동계가 반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지급받던 노조 전임자 임금이 줄어들기때문이라고 본다. 타임오프는 노조가 양보해야 하는 부분이다. 노동계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전임자 임금지급이 개선돼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반발은 관행이 바뀌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

▼타임오프제가 시행되면 노동운동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노동조합 자립시대로 가는 첫 발걸음이다.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는 셈이다. 타임오프는 단체교섭,산업안전,고충처리 등 노사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노조활동에 적용된다. 따라서 앞으로 노동운동은 노사문제에 보다 집중되고 외부와의 연대투쟁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 "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충당해야 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일본의 절반,유럽의 3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전임자 임금은 조합비 인상을 통해 충당하면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조 재정의 투명성이 올라가고 돈도 효율적으로 쓰일 것이다. "

▼일부 노조에선 임금인상을 통해 전임자 임금을 보전하겠다는 주장도 있는데.

"노사 교섭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노조 힘이 세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많은 노조가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특히 전임자가 과다하게 많은 사업장에선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조합원들의 임금이 전임자임금 보전 명목으로 인상돼도 조합원 반발 때문에 조합비를 쉽게 인상할 수 없을 것이다. "

▼타임오프 대상과 단협에서 정하는 유급전임자와는 차이가 있나.

"타임오프 대상이 명확히 어디까지인지 다소 논란이 있다. 근면위 공익위원 5명의 공통된 의견은 타임오프 대상을 법에 명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월권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노사 공동활동을 타임오프 대상으로 정하고 노조만을 위한 활동은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만 세웠다. "

▼타임오프 대상에 일반 노조간부들도 포함되나.

"전임자만 대상으로 기준을 잡았다. "

▼상급노동단체 파견자도 대상인가.

"상급단체 파견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만 노조 현실을 감안해 자신의 사업장과 상급단체의 일을 함께 하는 전임자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월권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규정은 만들지 않았다. "

▼근면위 협상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제로섬 게임과 같았다. 한 쪽이 얻을수록 다른 쪽은 손해보는 구조였다. 노조는 현상유지에 주력했고 경영계는 감소폭에 대한 기대수준이 컸다. 그러다보니 협상에 진통이 많았다. 공익위원들도 회의 초반에는 각자 생각이 달랐다. 하지만 토론이 진행될수록 의견이 모아졌다. 회의는 노 · 사 · 정 별로 의견을 모은 뒤 간사가 다시 논의하는 다층구조로 진행됐다. "

▼4월30일 시한을 넘긴 것에 대해 노동계가 문제삼고 있는데.

"노동계 쪽에선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부의 해석도 그렇고 법조인이나 법학교수들도 별 문제 없다고 했다. 이 조항은 훈시규정이어서 날짜가 지났다고 효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국회 환노위에서도 타임오프 한도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도 되나.

"근면위가 적법하게 타임오프 의결을 완료했고 의결 내용도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의결된 대로 일단 시행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나중에 보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근면위에서는 실태조사를 충분히 하고 해당 실무자들이 논의를 한 끝에 숫자가 나온 것이다. "

▼기아차를 비롯해 민주노총이 파업을 결의했고 한국노총도 반발하고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을 두고 파업을 하면 국민들도 등을 돌릴 것이다. 대기업 노조는 기득권을 갖고 있다. 다른 노동자보다 급여도 많고 고용안정성도 높다. 국민들의 기대와 상식에 전면 배치된다. 이렇게 되면 일반 조합원들도 전임자를 위한 파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

▼근면위에 참여했던 노사 대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표결을 통해 결정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현장에 뿌리내릴 것인가,어떻게 연착륙 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것이다. "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외국자본들이 한국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투쟁 만능주의를 버려야 한다. 투쟁을 한다고 해결되는 시대는 지났다. 파업을 무기로 요구만 한다면 자칫 기업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 경영계 역시 노조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노조를 동반자로 볼 때 경영도 건전해지고 종업원들의 사기도 올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

▼노사관계가 안정되려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나.

"최근 10년간 정부가 지나치게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결과적으로 갈등을 확산시키는 꼴이 됐다. 정부가 노사관계에 있어서 공정한 기준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노사 모두가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김태기 위원장은

김태기 위원장은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 경동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노동분야에선 알아주는 전문가다. 노사관계와 고용문제에 특히 강하고 분쟁 해결쪽에도 일가견이 있다. GM,포드,크라이슬러의 주가와 노사 단체교섭의 연계성을 다룬 아이오와대 박사학위 논문은 그 해 가장 우수한 논문에 주는 '폴 올슨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오와대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대학건물에 걸어 두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 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재직 중 우리나라 노동통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때는 노동법개정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특이하게 해병대 출신이다. 학계에서는'행동하는 학자'로 불린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을 지냈다.

정리=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