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대통령의 감춰진 유머
링컨의 평생 라이벌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링컨을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공격했다. 링컨이 청중들에게 물었다. “내가 만일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못 생긴) 얼굴을 하고 있겠습니까?”

레이건은 73세 때 재선에 도전했다. 대선 경쟁자 월터 먼데일이 TV토론에서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고령을 걸고 넘어졌다. 레이건은 “나는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다.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고 되받았다. 먼데일조차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링컨·레이건이 존경받는 이유

링컨과 레이건이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로 담대한 낙관주의와 여유로운 유머를 빼놓을 수 없다. 레이건은 저격당하고도 간호사들이 지혈을 위해 몸에 손을 대자 대뜸 “낸시(부인)에게 허락받았냐”고 물었다. 이런 위트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묘약이 됐다. 링컨은 남북전쟁 와중에도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고 했다. 웃음에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유머감각에 한결같이 놀란다. 영어 실력을 묻는 질문에 “영어가 잘 되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를 텐데 안 되니까 (정상들과) 껴안고 소곤소곤한다”는 MB다. 기자들에겐 “언론인을 만나보면 다들 멀쩡한데 신문을 보면 영 아니다”고 농담도 건넨다. 수시로 좌중의 폭소가 터진다. 단, 비공개 자리에서다.

그런 MB가 공식석상에만 나서면 영 딴사람이 된다. 잔뜩 굳은 표정에 감동도 유머도 없다. 대신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장사를 해봐서 서민 고충을 알고, 경영을 해봐서 기업인의 애로를 안다는 식이다.

말로 천냥빚을 갚는다지만, 거꾸로 천냥빚을 지는 게 말이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허풍 1,2위가 “내가 다 해봤는데”와 “나만 믿어”라고 한다. ‘세상 일이 다 그러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권위주의로 들리는 탓이다. 나꼼수는 MB의 입버릇을 ‘전지적 가카(각하)시점’이라고 비아냥댔다.

[한경포럼] 대통령의 감춰진 유머
MB는 ‘해봐서 안다’ 에 갇혀


‘해봐서 안다’는 MB화법은 복고풍 대통령상(像)만 잔뜩 심어놨다. MB물가는 70~80년대식 찍어누르기를 연상시켰고, 예고없는 현장 방문은 속된 말로 군화발로 ‘쪼인트 까던’ 모습의 데자뷔였다. 인사는 한물 간 올드보이와 ‘고소영’의 돌려막기만 기억 남는다. 디지털 뉴미디어 정책을 이끌 방송통신위원장마저 공직을 떠난 지 10년도 넘은 행시 5회를 앉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행시 23회)보다 12년이나 선배다.

출발부터 운도 안 따랐다. 대선 747공약은 초장부터 암초를 만나 좌초했다. 하지만 금융위기에도 이만큼 버텼고 G20 정상회의도 성공리에 치렀고, 해외 원전과 동계올림픽까지 따냈다. 매년 총리가 바뀌는 일본에선 MB를 수입하고 싶다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허망하다 못해 잔뜩 화가 나 있다.

그 이유는 MB 자신에게 있다. 레이건 같은 낙관과 위트, 영국 대처 총리 같은 신념과 결기가 아쉽다. 530만표 차의 프리미엄을 광우병 촛불 앞에 날린 채 청와대 뒷산으로 숨을 때 예견됐던 일이다.

아날로그 시대보다도 전인 주경야독·형설지공 시대를 산 MB다. 견마지로의 행정가로선 평가받아도 만인의 지도자로선 시대와 불화를 빚게 된 이유다. 나이 탓만도 아니다. 레이건은 만 70세에야 대통령이 됐다. 문제는 철학과 상상력이란 얘기다. 대처의 일생을 그린 영화 ‘철의 여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말이 곧 행동이 되고, 행동이 곧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곧 성격이 되고, 성격은 곧 운명이 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