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6000억 버리는 '유통기한'] 한달지나 먹어도 되는 우유·두부, 유통기한 지나면 죄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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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초과=상한 음식' 오해 심각
섭취 가능 '소비기한' 표기 등 정부 나서야
'유통기한 초과=상한 음식' 오해 심각
섭취 가능 '소비기한' 표기 등 정부 나서야
주부 심은미 씨(35)는 지난 21일 대형마트에서 우유를 사면서 진열대의 제일 안쪽에 놓여 있는 제품을 골랐다. “새로 들어와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제품은 대개 뒤쪽에 진열되기 때문”이다. 실제 앞쪽에 놓인 제품의 유통기한은 11월29일인데 제일 뒤의 것은 11월30일이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이처럼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제품을 선호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소비자의 84.6%가 같은 제품이라도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것을 산다. 심씨처럼 “유통기한이 지나면 식품이 상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유통기한 지나면 상한다?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유통시킬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마트 등에서 언제까지 팔 수 있는지를 정한 것이다. 유통기한은 제조업체가 정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가 내부 실험을 거쳐 어떤 제품의 유통기한으로 100일을 제시하면 정부가 70~80일 정도로 권고하고 제조업체는 이를 제품에 표기한다. 김희선 식약처 식품소비안전과 연구관은 “유통기한은 식품이 냉장 등 적절한 방식으로 보관되지 않았을 경우까지 감안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서 운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 개봉해서 바로 먹지 않고 놔두는 시간 등까지 고려한다는 얘기다.
유통기한은 소비기한(섭취가능기한)과는 다르다. 두부의 경우 제대로 냉장보관할 경우 90일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는 콩나물도 냉장보관하면 14일까지 먹을 수 있지만 유통기한은 8일로 정해져 있다고 전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부패나 변질 여부에 상관없이 상점에서 팔 수 없다. 반품되거나 재고로 쌓인 제품은 제조업체가 모두 폐기처분하도록 돼 있다. 식품산업협회는 섭취해도 상관없으나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수거돼 폐기되는 식품을 1.8%로 집계하고 있다. 국내 제조식품 규모가 33조원 수준이니 6000억원에 해당한다.
여기에다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는 물량까지 합치면 연간 1조원을 훨씬 넘는 식품이 유통기한 때문에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들이 최종 부담하게 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식품 폐기는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부패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생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식품 낭비 막기 실패
정부는 그동안 불필요한 식품 폐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2007년부터 잼·시럽·음료·맥주 등 국내에 유통되는 식품의 15%에 유통기한 대신 ‘품질유지기한’을 표기토록 했다. 맥주의 경우 유통기한 표기는 없고 품질유지기한만 있다.
이는 식품의 질이나 맛이 변하지 않는 기간이란 의미다. 보관을 제대로 한다면 품질유지기한이 지나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불필요한 폐기를 막아 연간 2200억원 정도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당시 정부는 기대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식품업계의 지적이다. 소비자들이 품질유지기한이 지난 상품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과 동일하게 인식한 탓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품질유지기한이 지난 제품을 팔면 소비자들이 상한 식품을 판매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이런 상품은 할인판매 등으로 소화한다”고 말했다.
작년 롯데제과 ‘꼬깔콘 고소한 맛’ 등 18개 품목에 시범 도입한 ‘소비기한’ 표기도 기대 이하였다. 당시 정부는 섭취한다고 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기한을 유통기한과 함께 제품 표면에 쓰도록 했다. 그러나 ‘효과는 크게 없고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자체 연구결과에 따라 올 3월 폐지됐다.
○안전사고 방지 위해 제도 유지 주장도
정부는 유통업체가 유통기한을 어기고 제품을 팔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15일~3개월 영업정지 및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따라서 유통업체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은 철저하게 회수한다.
제조업체들은 식품 폐기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통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폐기하는 것은 큰 손실”이라면서도 “식품안전 사고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먹지 않고 제품을 버린 다음 또 사게 되니까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식품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소비자의 식품 안전을 위해 현행 유통기한 체계를 유지하되 소비기한 표기를 단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식품 낭비를 줄이는 것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식품안전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더불어 소비기한을 병행 표기한다고 해도 버려지는 식품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 유통기한
sell by date. 식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최종시한.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 또는 변질되지 않았더라도 판매할 수 없어 제조업체로 반품된다.
■ 품질유지기한
best before date. 식품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보관할 경우 해당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 기한이 경과해도 판매할 수 있다.
■ 소비기한
use by date.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 최종시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한국 소비자들은 이처럼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제품을 선호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소비자의 84.6%가 같은 제품이라도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것을 산다. 심씨처럼 “유통기한이 지나면 식품이 상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유통기한 지나면 상한다?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유통시킬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마트 등에서 언제까지 팔 수 있는지를 정한 것이다. 유통기한은 제조업체가 정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가 내부 실험을 거쳐 어떤 제품의 유통기한으로 100일을 제시하면 정부가 70~80일 정도로 권고하고 제조업체는 이를 제품에 표기한다. 김희선 식약처 식품소비안전과 연구관은 “유통기한은 식품이 냉장 등 적절한 방식으로 보관되지 않았을 경우까지 감안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서 운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 개봉해서 바로 먹지 않고 놔두는 시간 등까지 고려한다는 얘기다.
유통기한은 소비기한(섭취가능기한)과는 다르다. 두부의 경우 제대로 냉장보관할 경우 90일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는 콩나물도 냉장보관하면 14일까지 먹을 수 있지만 유통기한은 8일로 정해져 있다고 전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부패나 변질 여부에 상관없이 상점에서 팔 수 없다. 반품되거나 재고로 쌓인 제품은 제조업체가 모두 폐기처분하도록 돼 있다. 식품산업협회는 섭취해도 상관없으나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수거돼 폐기되는 식품을 1.8%로 집계하고 있다. 국내 제조식품 규모가 33조원 수준이니 6000억원에 해당한다.
여기에다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는 물량까지 합치면 연간 1조원을 훨씬 넘는 식품이 유통기한 때문에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들이 최종 부담하게 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식품 폐기는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부패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생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식품 낭비 막기 실패
정부는 그동안 불필요한 식품 폐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2007년부터 잼·시럽·음료·맥주 등 국내에 유통되는 식품의 15%에 유통기한 대신 ‘품질유지기한’을 표기토록 했다. 맥주의 경우 유통기한 표기는 없고 품질유지기한만 있다.
이는 식품의 질이나 맛이 변하지 않는 기간이란 의미다. 보관을 제대로 한다면 품질유지기한이 지나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불필요한 폐기를 막아 연간 2200억원 정도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당시 정부는 기대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식품업계의 지적이다. 소비자들이 품질유지기한이 지난 상품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과 동일하게 인식한 탓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품질유지기한이 지난 제품을 팔면 소비자들이 상한 식품을 판매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이런 상품은 할인판매 등으로 소화한다”고 말했다.
작년 롯데제과 ‘꼬깔콘 고소한 맛’ 등 18개 품목에 시범 도입한 ‘소비기한’ 표기도 기대 이하였다. 당시 정부는 섭취한다고 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기한을 유통기한과 함께 제품 표면에 쓰도록 했다. 그러나 ‘효과는 크게 없고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자체 연구결과에 따라 올 3월 폐지됐다.
○안전사고 방지 위해 제도 유지 주장도
정부는 유통업체가 유통기한을 어기고 제품을 팔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15일~3개월 영업정지 및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따라서 유통업체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은 철저하게 회수한다.
제조업체들은 식품 폐기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통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폐기하는 것은 큰 손실”이라면서도 “식품안전 사고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먹지 않고 제품을 버린 다음 또 사게 되니까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식품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소비자의 식품 안전을 위해 현행 유통기한 체계를 유지하되 소비기한 표기를 단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식품 낭비를 줄이는 것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식품안전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더불어 소비기한을 병행 표기한다고 해도 버려지는 식품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 유통기한
sell by date. 식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최종시한.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 또는 변질되지 않았더라도 판매할 수 없어 제조업체로 반품된다.
■ 품질유지기한
best before date. 식품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보관할 경우 해당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 기한이 경과해도 판매할 수 있다.
■ 소비기한
use by date.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 최종시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