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신각종 왜 33번 치나
신라 선덕여왕은 “내가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 도리천이 어디인지 묻자 ‘(경주) 낭산(狼山)의 남쪽 봉우리’라고 했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를 가리킨다. 중앙의 제석천이 사방 32성의 신을 지배하는 이 천상계를 33천이라 하는데, 33천의 인도어 음역이 곧 도리천이다.

이는 단순히 인도나 불교의 세계관에 그치지 않고 우리 문화 곳곳에 녹아 있다. 조선시대 과거의 문과 합격자 정원이 33명이고 3·1 운동 때 민족대표가 33명이며 해인사의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가 33계단이다. 보신각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신각 종은 원래 조선 태조 5년(1395)부터 하루 두 차례 울렸다. 도성 문이 열리는 파루(오전 4시)에 33번, 문이 닫히는 인정(오후 10시)에 28번을 쳤다. 28은 불교의 28계와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종은 원래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108번을 쳤는데 나중에 연례행사인 제야의 종으로 이어졌다. 한 해의 마지막 순간까지 107번을 치고 새해로 바뀐 직후에 한 번 치는 게 상례였다고 한다.

108번인 이유에 대해서는 1년의 12개월과 24절기 72후의 숫자를 합친 것이라는 설, 불교의 108번뇌를 하나하나 깨뜨린다는 설이 있다. 일본에서도 전국의 절에서 제야의 종을 108번 친다.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가난한 어머니와 두 아들도 섣달 그믐밤 소바(메밀국수) 한 그릇을 나눠먹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1800년대에 조선을 방문한 여성 선교사는 “(서울의 종소리가) 대단히 부드럽고 엄숙하며 저음이지만 가슴 속을 깊이 파고든다”고 묘사했다. 종의 안쪽을 때려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서양종에 비해 바깥을 때려 공명음을 길게 울리는 동양종의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현대식 제야의 종소리는 1929년 경성방송국의 생방송에서 시작됐고 6·25가 끝난 1953년에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1994년에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계 인사 50명이 타종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올해는 축구선수 차두리를 비롯해 동작소방서 소방위, 명동 관광안내원 등 11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을 종소리로 마감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서양의 카운트 다운이나 불꽃놀이보다 훨씬 운치있다. 그 은은한 소리의 끝에 근심과 걱정, 아쉬움을 모두 실어 보내고 새해에는 산뜻하고 새로운 종소리의 울림을 기대해보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