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모든 가격 통제, 악마의 유혹
바보들은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제도를 만든다. 그래서 사고가 터지고 나면 악마를 찾아 세상을 뒤집는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악마는 우리 자신이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나룻배와 샛강 정도에나 어울리는 이웃집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그러나 1000명 페리를 몰고 다녔다. 후진성은 그렇게 널려 있다.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왜 악마가 됐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항만청 공무원은 천연덕스럽게도 “여객선 요금은 신고제다. 그러나 4, 5년에 한 번 조정해준다. 물가안정 차원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답한다. 물론 그만의 책임도 아니다. 위에서 시키니까 하고 전임자부터 해왔다. 그래서 “작년에 손실이 났다고 바로 요금을 올려줄 수는 없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바로 그것이 이런 참사를 불러온 숨은 원인이다. 그런 통제요금 아래에서 여객선 사업을 하려면 증축을 해서 화물을 더 쌓아야 하고 선장과 선원도 싸구려를 써야 한다. 조금 더 쌓아서 전복되지 않으니 조금 더 쌓아보고 또 조금씩… 그렇게 기어이 전복될 때까지 화물을 쌓았던 것이다. 악은 그렇게 진부하고 평범하고 친근하다. 어제도 괜찮았는데 뭐,…라는 일상적인 악마의 출항이었다.

청해진해운은 작년에 7억8540만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물론 고의 적자였을 수도 있다. 경쟁자가 들어오는 것을 좌절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정 관청과 결탁해 장부상 적자를 내고 이익은 적절히 나눠 갖는 것이다. 경쟁자가 들어오면 모든 것이 시끄러워진다. 사업자들에게 닭 모이 주듯 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체질에도 자유경쟁은 맞지 않다. 그렇게 적자인 독점 노선이 유지된다. 지금 한국의 섬들을 연결하는 수많은 연안여객 노선의 절반 이상은 적자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가격 통제가 만들어낸 악마는 도처에서 때를 기다린다.

투명한 시장경제 원리는 악마의 서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다. 시장가격이라야 장기적으로 안전과 이익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다. 사업의 생명줄은 이익이다. 바보들은 사업가의 탐욕을 비난한다. 그러나 필수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은 정부요 소비자다. 통제가격 아래에서 이윤을 내려면 불법의 유혹이 생긴다. 연안여객의 불법 증축과 과적은 고질병이지만 사업자에겐 유일한 해결책이다. 정부가 요금에서 덜어낸 그만큼은 반드시 증축되고 과적된다. 부패도 일상화된다. 악의 평범성이다.

심야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중에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차가 몇 대나 있을 것인가. 택시는 시간거리 병산제가 도입된 이후에야 사고를 줄일 수 있었다. 안전은 결국 돈 문제다. 시장경제 규칙 외엔 안전을 해결할 방법도 없다. 통제 아닌 자유 가격 제도만이 사업자에겐 투명한 이윤을, 그리고 승객들에겐 안전을 보장한다. 작년 이맘때쯤 터진 원전비리 사건도 구조는 같다. 원전설비 납품 과정에서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부품들이 대거 납품됐다. 시험 성적서는 위조됐다. 제조업체인 JS전선, 검증기관인 새한티이피, 승인기관인 한국전력기술까지 모두 조직적으로 가담했던 것이다.

정홍원 총리는 당시에도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원전부품이나 세월호 증축이나 본질은 같다. 전기가격을 통제해왔던 정부야말로 실은 원전비리의 숨은 악마였다. 이것이 모든 안전문제의 본질이요 부패하고 무능해 보이는 공무원 문제의 본질이다. 통제 가격인 철도 역시 언제 어디서 무슨 사건이 터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협소한 시장에서 가격 형성이 어렵다는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유가격이라야 보조금 계산이나마 가능하다. 바보들은 10년 전에도, 작년에도, 지금도 더 강한 가격통제와 안전규정 강화를 주문한다. 그러나 절대로 돈을 더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유가격이라야 비로소 투명해진다. 악마는 그것을 보고서야 슬그머니 물러난다. 아무도 악마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게 평범한 일상의 행복인 거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