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신림동 고시촌에 서점 '북션' 운영하는 정성훈 대표 "동네 서점 레드오션만은 아냐, 성공모델 만들겠다"
12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서점 ‘북션’에서 만난 정성훈 대표(45·사진)는 1층 북카페를 가리키며 “동네 서점이 레드오션인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말대로 북카페에선 많은 젊은이가 담소를 나누며 책을 읽고 있었다.

고시촌에서 10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해오던 정씨가 ‘새책’ 서점을 차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초다. 그는 고시촌의 상징이던 광장서적이 폐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광장서적이 있던 곳을 임차해 북션을 개업했다.

광장서적은 1978년 이해찬 전 총리가 문을 연 뒤 지난해 1월 부도로 문을 닫을 때까지 신림동 고시촌을 대표하던 서점이었다. 고시 서적뿐 아니라 일반교양서, 초·중·고 학습서 등 다양한 책을 팔았다. 광장서적의 폐업은 사법시험의 단계적 폐지와 맞물려 고시촌 쇠락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정 대표는 “고시생들이 줄어들더라도 신림동을 대표하는 동네 서점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서점에서 직접 책을 만지고 읽으면서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려는 수요는 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민은 수익성이었다. 서점을 내는 데 수억원을 투자했고, 일부는 대출을 받았다. 주변에선 “헌책방으로 번 돈을 다 까먹을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정 대표는 그러나 “동네 서점이라고 해서 다 망하진 않는다”며 “고객 서비스와 도서 업데이트 시스템 등을 시내 대형서점 못지않게 갖췄다”고 강조했다.

고시촌이 쇠퇴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수익모델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3만여명의 학생·교수 등이 있는 서울대가 북션의 최우선 공략 대상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만도 5000여명에 이른다. 광장서적 시절엔 고시책을 주로 팔았기 때문에 서울대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서울대 인근 지역으로 당일 배달을 시작한 배경이기도 하다.

정 대표는 사시 준비를 위해 1995년 고시촌에 들어온 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책의 매력에 빠져 헌책방을 차렸다. 식사도 거르며 서점일에 매달리던 정씨를 눈여겨본 하숙집 아주머니가 선뜻 5000만원을 빌려줬다. 헌책방이었지만 전면을 유리로 꾸몄고,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정 대표는 “켜켜이 쌓인 책들 사이로 쓸쓸히 앉아 있는 초로(初老)의 헌책방 주인이 되긴 싫었다”고 말했다.

북션의 목표는 동네 서점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는 것이다. 정 대표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에 대비하고 있다. 새책 할인폭이 15% 내로 제한되면 동네 서점이 다시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북션의 성공 경험이 쌓이면 다른 동네 서점들의 리모델링도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