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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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일본의 닛신식품은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했다. 이어 1971년에는 세계 최초의 컵라면을 개발했다. 두 제품 모두 ‘라면왕’으로 불리는 안도 모모후쿠 닛신식품 창업자의 작품이었다. 라면이 탄생하면서 식당에서 먹던 면요리를 집에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오사카의 작은 셋방에서 시작된 닛신식품은 지난해 기준으로 4176억2000만엔(약 4조19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런 성공 뒤에는 아버지가 세운 회사를 물려 받아 30년 가까이 운영한 안도 고키가 있다. 그는 1985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장에 올라 닛신식품을 세계 11개국 이상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게 하는 밑거름을 쌓았다.

◆뉴욕의 방랑자에서 30대 젊은 사장으로

안도 고키 사장은 1947년 안도 모모후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라면을 개발한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청소년 시절을 지내고 게이오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까지 떠났다.

뉴욕에서 그는 부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활하고 싶은 마음에 빈민가 웨스트사이드의 작은 원룸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대학원 수업보다는 웨스트사이드 거리를 걷고 공연을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자유로운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생활을 전해 들은 아버지가 그를 LA공장으로 발령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임무였다.

당시 닛신식품은 미국 진출은 했지만 성과는 없는 상황이었다. 라면을 판매하는 곳은 대부분 동양계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몇 군데였고 미국인들은 라면이 뭔지도 몰랐다.

안도 사장은 대형 슈퍼마켓 앞 공간을 빌려 상품을 진열하고 설명과 시식판매를 반복했다. 직원을 40명에서 167명까지 늘려 미국 전역을 돌면서 라면을 알렸다. 판매량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공장에는 재고만 쌓여갔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인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 미국인 여성 20명을 판매원으로 고용해 시식 행사를 꾸준히 진행했다. 3개월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한 번 라면을 사갔던 고객들이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안도 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간장이나 참깨고추기름 맛을 싫어하는 미국인들에게 향신료 향을 줄이면서 칼로리가 낮은 탑라면을 개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2년 만에 소매점 300곳에서 2000곳으로 영업망을 늘리며 미국 법인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놨다.

미국 상황이 일단락되자 아버지는 안도 사장을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1981년 형이 아버지를 이어 사장에 올랐고 그는 전무로 승진했다. 하지만 얼마 후 상황이 달라졌다. 형이 돌연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가 1985년 6월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장에 취임하게 된 것이다.

◆창업자를 넘어서라…타도 컵누들

당시 회사 안에는 컵누들만 있어도 경영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안도 사장은 취임 첫날 아버지의 작품이자 닛신식품의 일등공신인 컵누들을 타도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1위를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 없이 회사는 계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내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브랜드 매니저 제도다. 닛신식품에는 컵누들, 치킨라면 등 총 7개 브랜드가 있었다. 안도 사장은 이 브랜드들을 크기에 따라 5개의 그룹으로 나눠 그룹별로 브랜드 매니저를 뒀다. 매니저들은 각 브랜드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야 했다. 시장 점유율을 뺏고 뺏길 때마다 바로 평가를 받았다. 인센티브도 강력했다. 안도 사장은 “막대한 이익을 가져올 만한 상품을 개발한다면 보너스로 2억엔도 줄 수 있다”고 공표하며 경쟁을 독려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브랜드 매니저가 남의 브랜드로 신제품을 만들 수도 있게 한 브랜드 파이트 제도도 도입했다. 당장 내가 신제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남이 자신의 브랜드로 개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매니저들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런 경쟁적인 분위기 덕에 닛신식품은 연간 300종 이상의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신제품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인스턴트 라면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라고 안도 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경쟁회사에 시장 점유율을 뺏기는 것보다 내부 경쟁을 통해 우리 회사가 가져오는 것이 낫다”며 “브랜드 매니저를 도입하기 전 31%였던 시장점유율이 9년 만에 42%로 늘어난 것도 브랜드 매니저 덕”이라고 말했다.

◆공격적인 경영을 위해 직원들을 독려하라

안도 사장은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먼저 그는 매년 봄 300명의 관리직 직원들과 일일이 개인 면담을 한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다. 담배 끊어라, 살빼라 등 건강 관리에 대한 말부터 업무실적에 대한 대화까지 이어진다. 그는 관리직 사원의 아내가 몇 살인지, 아이가 몇 명인지 등을 모두 저장해놓고 있다. 브랜드 매니저 등 책임자들은 그가 개발한 제품의 손실액이 얼마인지, 이익은 얼마인지도 저장해 둔다. 직원들은 사장의 관심에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긴장하고 업무에 임하게 된다.

과장이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년 무인도 체험도 진행한다. 협력도 중요하지만 회사에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세면도구, 지갑, 라이터, 휴대폰 등은 금지다. 물, 쌀, 치킨라면 등으로 2박3일을 버텨야 한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과감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실행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은 귀로 들은 것은 잊을 수 있지만 몸으로 체험한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는 직무연봉제를 도입했다. 광고부장은 얼마, 영업부장은 얼마 하는 식으로 관리직의 직무에 따라 매출, 이익공헌도에 맞는 고정연봉을 책정하는 것이다. 각 부장 자리는 공모를 통해 지원자를 받아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는다. 젊은 직원들도 부장이 되면 연봉이 두 배 이상 뛸 수 있다. 인사 정책을 연공서열에서 능력주의로 바꿔 사내 경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안도 사장은 사회공헌활동도 적극적이다. 이익이란 결과일 뿐,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사업철학을 이어 받았다. 그는 닛신식품 창업 50주년인 2008년부터 앞으로 50년간 매년 두 가지씩 100가지 사회공헌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케냐에서 펼치는 아프리카 자립 지원사업이다. 다양한 라면 조리법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조리된 라면은 가난한 지역 초등학교 급식으로 무상으로 제공한다. 케냐에 치킨라면 연구제작소도 만들어 하루 1000개를 만들 수 있는 생산라인을 기증하기도 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