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여행자보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지만 까다로운 가입조건 탓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행자가 15세 미만일 때는 사망 시에 보험금을 한 푼도 주지 않는 약관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들은 1인당 1억원의 여행자보험금을 받았지만, 만약 탑승자가 중학생이거나 초등학생이었다면 거의 대부분 보험금을 받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만 15세 미만’은 사망해도 보험금 없어

15세 미만은 여행 가지 말라는 여행자보험
경기 소재 특수학교인 성은학교 교사들은 오는 10월 예정인 현장 학습을 준비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보험사에 문의한 결과 초등학생의 경우 사망 시 보험금을 주는 여행자보험을 한 군데서도 판매하지 않아서다. 접촉했던 LIG손해보험 관계자로부터 “15세 이상은 여행 도중 상해사망 시 2억원, 질병 사망 시 2000만원의 보험금이 나오지만, 15세 미만 청소년과 아동은 사망 담보가 안되며 이는 여행자보험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처럼 청소년에 대한 여행자보험의 보장이 제한적인 이유는 상법 보험편(732조)에서 ‘15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사망보장 보험은 무효’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이들을 해치는 범죄를 막기 위한 미성년자 보호 차원에서 1991년부터 해당 조항이 적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환 성은학교 행정실장은 “현장 학습처럼 인솔교사들이 안전 관리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악용 가능성 때문에 사망 보장을 안 해주는 건 이해하기 힘든 제한”이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일괄적으로 나이를 제한하는 데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상법은 법무부 소관이라 개선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80세 이상은 가입조차 어려워

15세 미만뿐만 아니라 80세 이상 고령자도 보험업법에 따라 여행자보험 가입에 제약을 받고 있다. 금감원이 2011년 80세 이상 고령자도 여행자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행정지도에 나섰지만 받아주는 보험사는 소수다. 특히 80세 이상 노인은 질병으로 사망할 때 보험금이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 보험 가입이 가장 필요한 노인들이 정작 여행자보험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고령자의 여행자보험 제약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간 권역다툼에서 비롯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망 담보는 생명보험의 영역이지만 여행자보험이 손해보험사 상품이다 보니 어정쩡한 80세 가입제한 조항이 생겨났다”며 “업권 간 기싸움이 만만치 않아 조정하고 싶어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 여행자보험

여행 출장 나들이 중에 발생한 상해 질병 등의 신체사고는 물론이고 휴대물품 손해, 타인에 대한 배상책임까지 보장해 주는 보험. 거주지 출발 시점부터 복귀까지의 여행 전 과정을 보장하는 소멸식 보험이다. 보험료가 최저 2000원으로 저렴하고, 인터넷으로도 간단히 가입할 수 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