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주변 고급 빌라촌에 모여 있던 주한 외국대사관들이 도심 오피스빌딩으로 이주하고 있다. 최근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동, 동빙고동 일대 단독주택 임대료가 급등하자 경제성과 실용성을 갖춘 사무실을 선호하는 추세다.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있었던 독일 대사관. 최근 중구 서울스퀘어로 이전했다.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있었던 독일 대사관. 최근 중구 서울스퀘어로 이전했다.
동빙고동의 ‘터줏대감’ 격인 주한 독일대사관은 지난 16일 중구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로 이전했다. 동빙고동 일대는 1998년 독일대사관이 입주한 뒤 각국 대사관이 모여들어 대사관 거리가 형성됐다. 현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카타르, 헝가리, 브루나이 등 10여개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이 중에서도 동빙고동 장문로 초입에 있는 독일대사관은 유럽풍으로 지어진 5층짜리 건물로 주한 대사관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접근성 취약과 임대료 상승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이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관계자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동빙고동 일대 집값과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며 “독일대사관이 떠나면서 다른 대사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5년 새 두드러진다. 특히 영국, 캐나다, 러시아 대사관이 자리한 정동과 광화문 일대로 대사관 이전이 활발하다. 동빙고동과 이태원동에 있던 뉴질랜드와 노르웨이 대사관은 각각 2010년과 2011년 중구 정동빌딩으로 이사했다. 같은 건물에는 네덜란드 대사관이 입주해 있다. 오만대사관도 2011년 종로구 신문로 1가에 건물을 신축하면서 동빙고동에서 옮겨 왔다.

이 밖에 호주, 오스트리아, 콜롬비아, 아일랜드 대사관도 광화문에 둥지를 틀었다. 대사관저가 모여 있는 성북동과 정부청사에서 가깝고 비자나 영사 업무를 보러 오는 일반인과 기업인들이 찾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독일대사관은 서울스퀘어에 독일문화원과 메르세데스벤츠 한국법인이 입주해 있어 시너지 효과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실 유지, 관리가 편리하다는 점도 오피스빌딩으로 이주하는 이유다. 추가 임차가 가능해 사무실을 넓히기 쉽고 정원 관리와 건물 보수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분석이다. 서울시내 주요 업무지구는 오피스빌딩이 대거 들어서면서 임대 경쟁이 치열해졌다. 종합부동산자산관리 업체인 젠스타가 발표한 ‘2014년 2분기 오피스시장 분석’에 따르면 강북 도심권 오피스 공실률은 전년 대비 0.9%포인트 상승한 7.3%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일정 기간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렌트프리’를 제공하거나 무료 주차 대수를 늘려주는 등 입주사에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서울스퀘어는 월 임대료가 3.3㎡당 평균 10만~11만원 선으로 1년 계약 시 3~4개월치 임대료를 깎아주고 있다. 장기계약하거나 공간을 분할하지 않고 대형 평수를 임차하면 임대료 할인율이 높아진다.

반면 용산구 단독주택을 빌릴 경우 월 임대료는 오피스빌딩의 최대 두 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외국대사관 관계자는 “용산에 건물면적 330㎡(100평)의 고급 빌라를 임차하는 데 월 1000만~2000만원이 드는데 같은 금액이면 도심 내 더 넓은 오피스빌딩을 빌릴 수 있다”며 “고급 빌라에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는 대사관들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