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을 개척한 사람들] 김봉진, 전단지 주워 식당정보 5만개 모아 창업 3년 만에 '철가방 시장' 평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New Frontiership Korea
(1)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 만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누적 다운로드 1500만건 넘어…골드만삭스 등에서 550억 유치
공고-전문대 나온 디자이너, 수제 디자인 가구 실패 후 재도전
'펀 경영'으로 일하기 좋은 中企 1위
(1)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 만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누적 다운로드 1500만건 넘어…골드만삭스 등에서 550억 유치
공고-전문대 나온 디자이너, 수제 디자인 가구 실패 후 재도전
'펀 경영'으로 일하기 좋은 中企 1위
‘경영하는 디자이너, 김봉진.’ 그의 명함에 새겨져 있는 문구다. 국내 1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을 만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38) 얘기다. 김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사람들에게는 “디자인을 좀 더 잘하고 싶어 창업했다”고 설명한다. 뿔테 안경에 머리를 밀고 턱수염을 기른 그의 외모는 영락없는 디자이너다. 김 대표는 ‘공고-전문대(서울예술대)’ 출신이란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는 회사 창립 3년 만에 대한민국의 음식배달 시장 절반을 장악하며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배달의민족 앱 누적 다운로드 수 1500만건, 월간 주문량 430만건. 하루에도 14만건 이상의 음식 주문이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말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은 배달의민족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40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배달 앱 시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 유치다. 김 대표는 “배달의민족이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은 550억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길거리 전단 줍기부터 시작한 사업
과거 국내 음식배달 시장은 ‘전단지’ 중심이었다. 김 대표가 사업 초기 길거리를 걸을 때면 바닥부터 살폈던 이유이기도 하다. 행여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전단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앱에 담을 음식점들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사람에겐 쓰레기나 다름없는 전단이 그에게는 보물이었다.
김 대표는 “전단 인쇄소에 가서 제발 한 장만 빼달라고 사정하기도 하고, 쓰레기통도 뒤져가면서 전단을 모았다”며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데이터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정보를 모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니 어느새 5만개가 넘는 음식점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김 대표가 배달 앱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스마트폰 초창기부터 앱 서비스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이다. 그는 처음엔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스마트폰용 앱으로 만드는 데 도전했다. 그러나 방대한 전화번호를 모으기도 힘든 데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결국 포기했다.
그러다 ‘치킨집, 중국집 정보만 모아보자!’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전화를 통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경제활동이 치킨 족발집 등과 같은 배달음식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보를 모으고 앱을 통해 서비스하면서 지금의 배달의민족 앱을 만들 수 있었다.
“일은 내면을 수련하는 과정”
김 대표는 어릴 적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공고에 진학했지만 부모를 설득한 끝에 서울예술대에 진학해 디자인을 공부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해 창업에 나섰다. 그의 첫 창업 아이템은 ‘수제 디자인 가구’. 과거 스웨덴 가구 유통업체 이케아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가구 디자인’에 꽂혔기 때문이다.
질 좋은 자재로 가구를 만들어 강남 대치동 일대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말 그대로 ‘폭삭’ 망했다. 전세금까지 모두 날리고 수억원의 빚까지 졌다. 당시 네 살배기 딸 걱정에 눈앞이 막막했다.
고정 수입이 필요했던 그는 어렵게 주변의 추천을 받아 네이버에 입사했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닥치는 대로 책도 읽었다. 이때 그의 인생을 바꾼 책 하나를 만났다. 일본의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쓴 ‘왜 일하는가’라는 책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일이라는 것은 나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일은 사람의 내면을 키우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김 대표가 2년이 넘는 755일 동안 쉬지 않고 전 세계 웹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디자이너 수련’을 했던 건 그의 내면을 키우는 힘이 됐다. 이후 그는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셋째 형(김광수 씨)과 함께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우아한형제들의 ‘펀 경영’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예뻐.” 배우 류승룡이 모델로 나오는 배달의민족 광고 문구다. 경희는 사실 회사 직원 이름이다. 김 대표는 “광고가 반응이 좋아 이후엔 다른 직원 이름도 따 다양한 카피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구성원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펀(fun) 경영’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기업정보 사이트인 잡플래닛과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한국 기업 50곳’에서 중소기업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독서광인 김 대표의 철학에 따라 직원들의 도서구입비는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서로 관심을 갖고 배려해주기 위한 독특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뜻의 ‘지만가’ 프로그램은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 등의 생일에 조기 퇴근하는 제도다. ‘지만 먼저 간다’고 해서 지만가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회사 문화는 사람으로 따지면 영혼과 같은 것”이라며 “회사는 사라지더라도 우리의 문화는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 김봉진 대표는…
△ 1976년 서울 출생 △ 1997년 서울예술대 졸업 △ 2002~2003년 디자인그룹 이모션 디자이너 △ 2003~2005년 네오위즈 디자이너 △ 2008~2010년 네이버 디자이너 △ 2011년 우아한형제들 창업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배달의민족 앱 누적 다운로드 수 1500만건, 월간 주문량 430만건. 하루에도 14만건 이상의 음식 주문이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말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은 배달의민족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40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배달 앱 시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 유치다. 김 대표는 “배달의민족이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은 550억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길거리 전단 줍기부터 시작한 사업
과거 국내 음식배달 시장은 ‘전단지’ 중심이었다. 김 대표가 사업 초기 길거리를 걸을 때면 바닥부터 살폈던 이유이기도 하다. 행여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전단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앱에 담을 음식점들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사람에겐 쓰레기나 다름없는 전단이 그에게는 보물이었다.
김 대표는 “전단 인쇄소에 가서 제발 한 장만 빼달라고 사정하기도 하고, 쓰레기통도 뒤져가면서 전단을 모았다”며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데이터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정보를 모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니 어느새 5만개가 넘는 음식점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김 대표가 배달 앱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스마트폰 초창기부터 앱 서비스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이다. 그는 처음엔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스마트폰용 앱으로 만드는 데 도전했다. 그러나 방대한 전화번호를 모으기도 힘든 데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결국 포기했다.
그러다 ‘치킨집, 중국집 정보만 모아보자!’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전화를 통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경제활동이 치킨 족발집 등과 같은 배달음식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보를 모으고 앱을 통해 서비스하면서 지금의 배달의민족 앱을 만들 수 있었다.
“일은 내면을 수련하는 과정”
김 대표는 어릴 적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공고에 진학했지만 부모를 설득한 끝에 서울예술대에 진학해 디자인을 공부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해 창업에 나섰다. 그의 첫 창업 아이템은 ‘수제 디자인 가구’. 과거 스웨덴 가구 유통업체 이케아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가구 디자인’에 꽂혔기 때문이다.
질 좋은 자재로 가구를 만들어 강남 대치동 일대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말 그대로 ‘폭삭’ 망했다. 전세금까지 모두 날리고 수억원의 빚까지 졌다. 당시 네 살배기 딸 걱정에 눈앞이 막막했다.
고정 수입이 필요했던 그는 어렵게 주변의 추천을 받아 네이버에 입사했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닥치는 대로 책도 읽었다. 이때 그의 인생을 바꾼 책 하나를 만났다. 일본의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쓴 ‘왜 일하는가’라는 책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일이라는 것은 나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일은 사람의 내면을 키우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김 대표가 2년이 넘는 755일 동안 쉬지 않고 전 세계 웹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디자이너 수련’을 했던 건 그의 내면을 키우는 힘이 됐다. 이후 그는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셋째 형(김광수 씨)과 함께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우아한형제들의 ‘펀 경영’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예뻐.” 배우 류승룡이 모델로 나오는 배달의민족 광고 문구다. 경희는 사실 회사 직원 이름이다. 김 대표는 “광고가 반응이 좋아 이후엔 다른 직원 이름도 따 다양한 카피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구성원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펀(fun) 경영’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기업정보 사이트인 잡플래닛과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한국 기업 50곳’에서 중소기업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독서광인 김 대표의 철학에 따라 직원들의 도서구입비는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서로 관심을 갖고 배려해주기 위한 독특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뜻의 ‘지만가’ 프로그램은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 등의 생일에 조기 퇴근하는 제도다. ‘지만 먼저 간다’고 해서 지만가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회사 문화는 사람으로 따지면 영혼과 같은 것”이라며 “회사는 사라지더라도 우리의 문화는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 김봉진 대표는…
△ 1976년 서울 출생 △ 1997년 서울예술대 졸업 △ 2002~2003년 디자인그룹 이모션 디자이너 △ 2003~2005년 네오위즈 디자이너 △ 2008~2010년 네이버 디자이너 △ 2011년 우아한형제들 창업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