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지 않는 '지구 팽이' 94년 만에 멈춘다
일명 ‘지구 팽이’로 불리는 자이로스코프 팽이(사진)를 만들어 온 일본 타이거상회가 94년 만에 제품 생산을 중단한다. 자이로스코프는 회전체의 역학적인 운동을 관찰하는 실험기구로 회전의(回轉儀)라고도 한다.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증명하는 데 활용돼 ‘지구 팽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미국 챈들러컴퍼니는 1917년 자이로스코프를 장난감 형태로 처음 만들었다. 일본에선 시계 장인이던 타이거상회 창업자가 1921년 개발했다. 이 제품은 일본에서 1960~70년대 연간 20만~30만개가 팔린 인기 상품이지만 최근 수요가 전성기의 10분의 1로 줄었다. 제조장인 세 명의 나이도 많아 아예 회사를 접기로 한 것이다.

자이로스코프는 팽이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용한다. 팽이처럼 고속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축을 계속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 팽이치기를 할 때 팽이를 옆으로 밀어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사면에서 팽이를 돌려보면 경사면에 따라 팽이가 비스듬하게 돌아가지 않고 꼿꼿하게 수직을 유지하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

자이로스코프 팽이처럼 회전 원반과 틀을 분리해 돌릴 수 있다면 자이로스코프가 완성된다. 비행기가 좌우로 몸체를 기울일 때 자이로스코프의 틀도 같이 좌우로 기운다. 하지만 회전하는 원반의 축은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에 회전축과 틀의 각도 차이를 측정하면 기운 정도를 알 수 있다. 팽이와 달리 기계식 자이로스코프는 전기모터를 돌리는 식으로 원반이 끊임없이 돌아가게 한다. 보통 여러 개의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센서를 조합해 정확도를 높인다.

자이로스코프는 여러 방식으로 만든다. 기계식을 비롯해 레이저 같은 빛을 이용한 광학식, 기존의 진동 자이로스코프를 반도체 칩에 구현한 극소전자기계(MEMS)식 등이 있다.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 기기에 쓰이는 자이로 센서는 모두 MEMS 방식이다. 자이로 센서는 비행기 우주선 잠수함 선박 미사일 등에 널리 쓰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