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에 사는 혹등고래는 몸집이 크지만 먹이를 사냥할 때는 민첩한 움직임을 보인다. 갯벌에 사는 조개는 포식자인 불가사리가 다가오면 재빠르게 도망을 친다. 서울대 연구진과 LG전자가 이런 혹등고래와 조개의 재빠른 움직임을 응용해 소음이 적게 나고 전기를 덜 쓰는 에어컨 팬(사진)을 개발했다.

최해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연구진과 LG전자 연구진은 혹등고래와 조개의 생물학적 특징을 모방한 에어컨 팬을 개발했다고 5일 발표했다.

혹등고래는 길이 15m, 무게 30t에 이르는 큰 몸집을 가졌지만, 먹이를 사냥할 때는 초속 2.6m 속도로 민첩하게 헤엄친다. 혹등고래가 이런 민첩성을 갖는 것은 배 아래쪽에 난 지느러미 앞부분의 혹 덕분이다. 고래는 공기 중에 뜨는 힘(양력)을 이용하는 비행기처럼 물에 뜨는 힘으로 바다를 헤엄치는데 지느러미는 항공기 날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지느러미에 난 혹은 고래가 물속에서 순간적으로 몸을 틀 때 생기는 복잡한 물 소용돌이인 ‘와류(渦流)’를 줄여 양력을 계속해서 유지해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조개껍데기에 빨래판처럼 나 있는 홈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날개 네 개로 구성된 팬을 제작했다. 혹등고래 지느러미를 모방한 혹을 날 부분에 배치하고, 날개 표면 전체에는 조개껍데기와 비슷한 빨래판 형태의 홈을 냈다. 이렇게 제작한 날개를 에어컨 실외기에 넣은 결과 소음이 2데시벨(dB)가량 줄어들고 소비 전력도 1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는 지난달 출시한 시스템 에어컨 ‘멀티브이 슈퍼5’에 이 기술을 활용했다.

최 교수는 “최근 조개껍데기의 홈을 항공기 동체와 날개에 적용한 무인항공기를 개발했다”며 “자연에서 얻은 생체모방 기술을 산업에 응용하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