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이정문화백 "미래 내다본 상상력 어디서 왔냐고요? 50년 신문스크랩이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965년에 현재 모습 예측한 '원로 만화가' 이정문 화백
인터넷 없는 시대서 미래를 그리다
태양열 주택·무빙워크·영상 통화…만화로 35년 후 생활상 보여줘
상상력 원천은 50년 신문 스크랩
하루도 안 빼놓고 신문 읽어…2050년엔 우주서 전기 생산할 것
"내 꿈? 20m 높이 로봇 만드는 것"
'철인 캉타우' 캐릭터 설계도 완성…언젠가 팬들 앞에 서는 날 기대
인터넷 없는 시대서 미래를 그리다
태양열 주택·무빙워크·영상 통화…만화로 35년 후 생활상 보여줘
상상력 원천은 50년 신문 스크랩
하루도 안 빼놓고 신문 읽어…2050년엔 우주서 전기 생산할 것
"내 꿈? 20m 높이 로봇 만드는 것"
'철인 캉타우' 캐릭터 설계도 완성…언젠가 팬들 앞에 서는 날 기대
원로 만화가 이정문 화백(75)의 경기 이천 작업실은 주말마다 문을 연다. 한적한 시골 마을 옆 작은 개천을 따라 올라가자 그의 작업실이 있는 작은 전원주택 단지가 나왔다. 빵 모자를 눌러쓴 이 화백이 잔디밭 정원까지 나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작업실 벽과 진열장에는 그의 대표 캐릭터인 심술통, 심똘이 등 ‘심술가족’ 캐릭터와 올해 마흔 살 생일을 맞은 로봇 캐릭터 캉타우 모형으로 가득했다. 이 화백은 2년간 작업 끝에 얼마 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 심술통 이모티콘 시리즈를 공개했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익살스럽게 되살아난 자신의 캐릭터를 보며 “요즘 기술이 좋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 화백은 미래를 그리는 만화가로 알려져 있다. 1965년 한 학생잡지사의 요청으로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를 그린 한 장의 그림이 얼마 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하지 않은 시절인데도 그는 상상만으로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태양열 주택, 마트에 설치된 무빙워크,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 영상통화 기능이 있는 휴대폰 등을 예측했다. 연간 국민소득이 100달러밖에 되지 않던 가난한 시대였지만 그의 상상 속엔 희망이 자리했다. 지난해 한국공학한림원이 창립 20주년 행사 초청장의 표지로 선택하면서 유명해졌다. 공학계 원로들도 시대를 앞선 그의 혜안에 탄복했다.
◆“약자 위한 후련한 심술”
이 화백 작품에는 ‘심술’이란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심술첨지와 심쑥이, 심똘이, 심술턱, 심술통 등 심술가족은 그의 대표 캐릭터다. 그중 가장 어른은 1959년 나온 심술첨지이며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을 모델로 한 심쑥이와 또래 심똘이가 남매쯤 되고, 심술통은 조카뻘로 보면 된다. 이 화백이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1985년부터 한 스포츠 신문을 통해 소개한 심술통이다. “지하철에서 한 승객이 신문을 보고 있어요. 심술통이 그 반대편 면을 읽는데 신문 주인이 얌체같이 그냥 다음 장을 넘긴 겁니다. 그러자 심술통이 신문 가운데 부분을 확 찢어 가버립니다. 신문 주인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요.” 매일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어깨너머로 앞사람 신문을 훔쳐 본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그는 전래동화에 나오는 놀부에서 심술 캐릭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약자 편에 서서 후련한 심술을 부리는 밉지 않은 캐릭터를 그리려고 했다. 그가 그린 만화 속 심술통에게 당한 이들 가운데는 못된 짓을 하는 사회 지도층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항의를 받는 일도 흔했다.
◆“전쟁 참화 속 미래 희망 품어”
이 화백은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전에 한국으로 왔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지만 서울에 살던 그와 가족은 피란길에 오르지 못했다.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의 삶은 끔찍했다. 골짜기 곳곳에 버려진 시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전후 어려워진 살림으로 구두닦이 생활을 하던 그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중학 과정을 마쳤다. 틈틈이 만화를 그리던 그는 경희대 상학과 1학년 때인 1959년 잡지 ‘아리랑’의 신인 만화가가 됐다. 대학 첫 여름방학에 무작정 떠난 무전여행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골을 지나는데 그렇게 우리나라가 가난한 걸 처음 알았어요. 해도 해도 너무 찢어지게 가난한 겁니다. 슬픔이 밀려들 정도였어요.”
그 시절 이 화백이 ‘꽂힌’ 신문기사가 하나 있다. 미래학자들이 수십년 뒤 미래사회를 전망한 내용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지난 50년 넘게 신문기사를 모아놓은 스크랩북을 가지고 나왔다. 책장을 열자 달탐사선 아폴로 11호의 발사 소식부터 남북 첫 정상회담 소식을 전한 뉴스까지 그가 잘라붙인 기사들로 빼곡했다.
전쟁의 기억과 신문 기사는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 “서울에 주둔한 군인들이 무전기를 들고 서로 통화하는 걸 봤어요. 언젠가 그보다 더 작고 가벼운 통신기기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죠. 해외 과학자들이 태양 빛에서 전기를 얻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신기했어요. 미래엔 그런 집이 많이 들어설 거라고 봤습니다.”
이 화백이 서기 2000년 미래를 그린 그림 속 기술은 지금은 대부분 실현됐다. 병원 치료와 교육을 집에서 받는 원격진료와 원격학습도 이미 이뤄지고 있다. 그는 2009년에 자신이 100세가 되는 2041년 모습을 상상한 그림을 그렸다. 구글 무인자동차처럼 혼자서 달리는 자동차 시대가 열려 음주단속을 피할 수 있고, 좁쌀 크기만 한 의료 로봇이 몸 안을 휘젓고 다니며 병을 치료할 것이란 내용이 들어 있다.
◆“웹툰시대 ‘빈익빈 부익부’ 심화”
그의 작업실 한쪽에 걸려 있는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두호 박수동 윤승운 고우영 신문수 오성섭 작가 등 국내 유명 만화가들이 함께 낚시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국내 만화계는 이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70~1980년대 전성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발 빠르게 문화가 소비되는 ‘스낵컬처’ 시대가 되면서 젊고 유능한 작가들이 웹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무기로 적응하고 있어요. 옛날 작가들은 아직도 펜으로 종이에 스케치하고 물감으로 색을 넣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죠. 지금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스타 웹툰 작가들이 인기몰이하는 반면 상당수 만화가는 생활고를 겪고 있다. 1970~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새소년, 보물섬 같은 만화 잡지나 단행본 시장이 사라지면서 원로 작가의 활동 폭은 더욱 줄었다. 클로버 문고와 같은 만화전문 출판사도 사람들에게 잊힌 지 오래다.
이 화백은 이런 변화의 바람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만화 시장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웹툰 작가가 1000명이면 그중 성공한 사람은 20명 남짓이에요. 언제가 됐건 뜰 때까지 버티든가 그만두는 수밖에 없죠. 만화계의 출판절벽 현상을 극복하려면 웹툰 말고도 이전 작가들이 활동할 아날로그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40세 맞은 토종로봇 캉타우”
올해는 이 화백에게 뜻깊은 해다. 그가 그린 대표 SF만화 ‘철인 캉타우’가 탄생한 지 40년을 맞았다. 100만년 전 지구에 온 두 외계 종족이 빙하기가 몰려와 동면(冬眠)에 빠졌다가 우연히 깨어나 쟁탈전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심술첨지와 심술통 말고도 캉타우는 이 화백이 아끼는 캐릭터다. “결혼 5년 만인 1973년에 큰딸이 태어났어요. 당시 TV가 보급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톰과 마징가 제트가 들어왔어요. 골목마다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난리가 났죠. 일종의 문화침투였습니다. 독자적인 우리 로봇 이야기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1976년 그렇게 ‘철인 캉타우’가 등장했다. 그는 일본 만화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로봇 몸체는 당시 한국인이 많이 먹던 항생제(마이신) 모양에서 가져왔고 손에는 조선시대 무기로 사용하던 철퇴를 들렸다. 공업화 정책으로 환경 문제가 떠오른 시대상을 반영해 지구 자연과 자원을 지키는 로봇으로 묘사했다. 석유나 원자력을 쓰지 않고 오로지 번개에서 에너지를 얻는 완벽한 ‘친환경 로봇’이었다.
이 화백은 철인 캉타우에 다시 한 번 숨결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2009년에는 캉타우의 설계도를 실제처럼 그리고 키(20m), 무게(20t) 같은 제원도 정했다. 정보력이 강한 요즘 젊은 사람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실감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캉타우가 팬들을 만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캉타우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국산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V)’가 다시 제작된다고 했지만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에요.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버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산 로봇 캐릭터는 아직도 꽤 튼튼한 팬층이 있습니다. 캉타우와 태권V가 다시 팬들 앞에 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지금도 꼼꼼히 신문과 방송을 본다”고 했다. 스마트 안경인 구글 글라스, 집안의 모든 기능을 자동화한 스마트홈과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보면 놀랍다고 했다. “2014년에 부탁을 받고 2050년 미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요. 우주에서 전기를 생산해 지구로 가져오는 시대가 온다는 내용이었죠. 기회가 된다면 2060년 미래 사회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천=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이 화백은 미래를 그리는 만화가로 알려져 있다. 1965년 한 학생잡지사의 요청으로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를 그린 한 장의 그림이 얼마 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하지 않은 시절인데도 그는 상상만으로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태양열 주택, 마트에 설치된 무빙워크,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 영상통화 기능이 있는 휴대폰 등을 예측했다. 연간 국민소득이 100달러밖에 되지 않던 가난한 시대였지만 그의 상상 속엔 희망이 자리했다. 지난해 한국공학한림원이 창립 20주년 행사 초청장의 표지로 선택하면서 유명해졌다. 공학계 원로들도 시대를 앞선 그의 혜안에 탄복했다.
◆“약자 위한 후련한 심술”
이 화백 작품에는 ‘심술’이란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심술첨지와 심쑥이, 심똘이, 심술턱, 심술통 등 심술가족은 그의 대표 캐릭터다. 그중 가장 어른은 1959년 나온 심술첨지이며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을 모델로 한 심쑥이와 또래 심똘이가 남매쯤 되고, 심술통은 조카뻘로 보면 된다. 이 화백이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1985년부터 한 스포츠 신문을 통해 소개한 심술통이다. “지하철에서 한 승객이 신문을 보고 있어요. 심술통이 그 반대편 면을 읽는데 신문 주인이 얌체같이 그냥 다음 장을 넘긴 겁니다. 그러자 심술통이 신문 가운데 부분을 확 찢어 가버립니다. 신문 주인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요.” 매일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어깨너머로 앞사람 신문을 훔쳐 본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그는 전래동화에 나오는 놀부에서 심술 캐릭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약자 편에 서서 후련한 심술을 부리는 밉지 않은 캐릭터를 그리려고 했다. 그가 그린 만화 속 심술통에게 당한 이들 가운데는 못된 짓을 하는 사회 지도층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항의를 받는 일도 흔했다.
◆“전쟁 참화 속 미래 희망 품어”
이 화백은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전에 한국으로 왔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지만 서울에 살던 그와 가족은 피란길에 오르지 못했다.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의 삶은 끔찍했다. 골짜기 곳곳에 버려진 시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전후 어려워진 살림으로 구두닦이 생활을 하던 그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중학 과정을 마쳤다. 틈틈이 만화를 그리던 그는 경희대 상학과 1학년 때인 1959년 잡지 ‘아리랑’의 신인 만화가가 됐다. 대학 첫 여름방학에 무작정 떠난 무전여행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골을 지나는데 그렇게 우리나라가 가난한 걸 처음 알았어요. 해도 해도 너무 찢어지게 가난한 겁니다. 슬픔이 밀려들 정도였어요.”
그 시절 이 화백이 ‘꽂힌’ 신문기사가 하나 있다. 미래학자들이 수십년 뒤 미래사회를 전망한 내용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지난 50년 넘게 신문기사를 모아놓은 스크랩북을 가지고 나왔다. 책장을 열자 달탐사선 아폴로 11호의 발사 소식부터 남북 첫 정상회담 소식을 전한 뉴스까지 그가 잘라붙인 기사들로 빼곡했다.
전쟁의 기억과 신문 기사는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 “서울에 주둔한 군인들이 무전기를 들고 서로 통화하는 걸 봤어요. 언젠가 그보다 더 작고 가벼운 통신기기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죠. 해외 과학자들이 태양 빛에서 전기를 얻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신기했어요. 미래엔 그런 집이 많이 들어설 거라고 봤습니다.”
이 화백이 서기 2000년 미래를 그린 그림 속 기술은 지금은 대부분 실현됐다. 병원 치료와 교육을 집에서 받는 원격진료와 원격학습도 이미 이뤄지고 있다. 그는 2009년에 자신이 100세가 되는 2041년 모습을 상상한 그림을 그렸다. 구글 무인자동차처럼 혼자서 달리는 자동차 시대가 열려 음주단속을 피할 수 있고, 좁쌀 크기만 한 의료 로봇이 몸 안을 휘젓고 다니며 병을 치료할 것이란 내용이 들어 있다.
◆“웹툰시대 ‘빈익빈 부익부’ 심화”
그의 작업실 한쪽에 걸려 있는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두호 박수동 윤승운 고우영 신문수 오성섭 작가 등 국내 유명 만화가들이 함께 낚시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국내 만화계는 이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70~1980년대 전성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발 빠르게 문화가 소비되는 ‘스낵컬처’ 시대가 되면서 젊고 유능한 작가들이 웹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무기로 적응하고 있어요. 옛날 작가들은 아직도 펜으로 종이에 스케치하고 물감으로 색을 넣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죠. 지금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스타 웹툰 작가들이 인기몰이하는 반면 상당수 만화가는 생활고를 겪고 있다. 1970~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새소년, 보물섬 같은 만화 잡지나 단행본 시장이 사라지면서 원로 작가의 활동 폭은 더욱 줄었다. 클로버 문고와 같은 만화전문 출판사도 사람들에게 잊힌 지 오래다.
이 화백은 이런 변화의 바람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만화 시장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웹툰 작가가 1000명이면 그중 성공한 사람은 20명 남짓이에요. 언제가 됐건 뜰 때까지 버티든가 그만두는 수밖에 없죠. 만화계의 출판절벽 현상을 극복하려면 웹툰 말고도 이전 작가들이 활동할 아날로그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40세 맞은 토종로봇 캉타우”
올해는 이 화백에게 뜻깊은 해다. 그가 그린 대표 SF만화 ‘철인 캉타우’가 탄생한 지 40년을 맞았다. 100만년 전 지구에 온 두 외계 종족이 빙하기가 몰려와 동면(冬眠)에 빠졌다가 우연히 깨어나 쟁탈전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심술첨지와 심술통 말고도 캉타우는 이 화백이 아끼는 캐릭터다. “결혼 5년 만인 1973년에 큰딸이 태어났어요. 당시 TV가 보급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톰과 마징가 제트가 들어왔어요. 골목마다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난리가 났죠. 일종의 문화침투였습니다. 독자적인 우리 로봇 이야기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1976년 그렇게 ‘철인 캉타우’가 등장했다. 그는 일본 만화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로봇 몸체는 당시 한국인이 많이 먹던 항생제(마이신) 모양에서 가져왔고 손에는 조선시대 무기로 사용하던 철퇴를 들렸다. 공업화 정책으로 환경 문제가 떠오른 시대상을 반영해 지구 자연과 자원을 지키는 로봇으로 묘사했다. 석유나 원자력을 쓰지 않고 오로지 번개에서 에너지를 얻는 완벽한 ‘친환경 로봇’이었다.
이 화백은 철인 캉타우에 다시 한 번 숨결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2009년에는 캉타우의 설계도를 실제처럼 그리고 키(20m), 무게(20t) 같은 제원도 정했다. 정보력이 강한 요즘 젊은 사람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실감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캉타우가 팬들을 만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캉타우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국산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V)’가 다시 제작된다고 했지만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에요.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버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산 로봇 캐릭터는 아직도 꽤 튼튼한 팬층이 있습니다. 캉타우와 태권V가 다시 팬들 앞에 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지금도 꼼꼼히 신문과 방송을 본다”고 했다. 스마트 안경인 구글 글라스, 집안의 모든 기능을 자동화한 스마트홈과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보면 놀랍다고 했다. “2014년에 부탁을 받고 2050년 미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요. 우주에서 전기를 생산해 지구로 가져오는 시대가 온다는 내용이었죠. 기회가 된다면 2060년 미래 사회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천=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