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소수의견] 소득↑ 출산율↓ '둘째 절벽'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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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의 경제학' 보고서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 인터뷰
"가구당 소득 높이기보다 양육비용 낮추는 정책이 효과적"
"가구당 소득 높이기보다 양육비용 낮추는 정책이 효과적"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고소득 부부는 왜 둘째를 안 낳을까?’ 포털 사이트에 걸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둘째를 낳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은 듯했다. 저마다 사정을 털어놓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내는 《나라경제》 3월호에 실린 짤막한 보고서를, 언론은 일제히 주목했다. 가구소득과 출산율의 디커플링(비동조화) 현상 자체가 흥미로운 데다 “둘째 낳을 엄두가 안 난다”는 맞벌이 부부의 심증을 확증으로 바꾸는 설명모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저출산의 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보고서의 주인공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를 이달 7일 만났다.
“연구문제 설정이 흥미롭던데요?” 서울시립대 미래관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던진 첫 마디에 그는 “정확히는 ‘소득이 증가하는데 출산율이 감소하는 까닭은?’이라는 주제입니다”라며 웃어보였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원래 보고서에서는 소득 수준 상승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봤습니다. 고소득층이라고 하면 ‘조작적 정의’가 불분명해지거든요. 실제로 초고소득층의 경우 ‘소득 증가-출산율 감소’ 공식이 성립하지 않죠.” 보고서에 인용한 1953~20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및 합계출산율 추이를 보면 소득 증가와 출산율 감소의 교차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인구변화의 고전적 이론인 맬서스 인구론이나 다윈 진화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다. 송 교수는 인간행동과 사회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연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개리 베커의 ‘자녀 수요에 대한 경제모형’을 적용했다. 이 모형은 자녀를 몇 명 낳을지 정할 때 부모는 자녀의 수와 자질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가구가 자동차 두 대를 산다고 하자. 첫 번째 차는 고급 외제승용차로, 두 번째 차는 저렴한 중고 소형승용차를 구매한다. 합리적 수요로 이해할 수 있다. 대상이 차가 아닌 자녀라면? 부모는 달라진다. 모든 자녀의 자질이 뛰어나기를 바라는 베커 모형에서는 둘째를 낳으면 첫째와 똑같이 더 많은 투자를 한다. 결과적으로 둘째를 포기하고 대신 기존 자녀의 자질을 높이는 투자에 집중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출산율 문제를 경제학 모델로 풀어낸 게 재미있어요.”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닙니다. 경제학이 다뤄온 내용이죠.” “그런가요?” “가구에서의 노동공급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노동경제학의 주제 중 하나거든요. 자녀 출산·양육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요.” 그래도 의문이 남았다. 왜 하필 ‘둘째 절벽’일까? 경제적으로만 판단하면 아예 자녀를 한 명도 갖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 아닌가? 고전 경제학의 대전제인 합리적 행위 가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송 교수는 “자녀를 일종의 효용을 주는 재화로 간주하는 경제학 모형도 있다. 자녀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이에 속한다”고 답했다. 예전의 경제학이 다루지 않았던 것,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거시경제학은 주로 가구 단위로 분석했습니다. 그걸로는 미처 설명되지 않는 결이 있어요. 그래서 미시경제학은 그 안의 가구원 사이에 일어나는 행동 메커니즘을 분석·이해하려 했죠. 가구 단위 움직임은 내부 행위의 결과라는 관점에 입각해서요.”
그렇게 보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트렌드는 이전의 정부 주도 가족계획과 유사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180도 다른 사회경제적 맥락을 갖는다. 송 교수는 “현상 자체는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반대”라고 짚었다.
궁금해졌다. 합계출산율이 5~6명대에 달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들은 비합리적 선택을 했던 걸까. “아니죠.”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의 자녀는 일종의 자원이었거든요. 노동력도 제공하고 성인이 되면 부모도 부양했죠. 그러면서 양육비용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자녀를 많이 낳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던 거예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경제적 비용 외의 요인이 커 보인다. 고연봉 대기업 맞벌이 직원 부부는 아이 한 명, 연봉은 높지 않아도 공무원 부부는 아이 두 명. 사기업 직원은 대체로 자녀 한 명, 공기업 직원은 자녀 두 명. 성급한 일반화로 치부하기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비용 문제보다는 양육환경, 이를테면 육아휴직을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복직은 가능한지 따위가 더 중요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송 교수는 “그런 부분도 모두 ‘비용’으로 봤다”고 했다.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반드시 들어가는 경제적 고정비용은 눈에 보이는 비용이다. 보이지 않는 비용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이 직장을 그만둘 경우 치르는 기회비용 등이 해당된다.
“비용 차원으로 접근하면 명료해져요.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 한 명당 들어가는 비용도 커집니다. 여력이 있다면 자녀에 투자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소득이 높을 경우, 육아 때문에 여성이 커리어를 포기하는 기회비용도 올라가죠.”
따라서 소득을 높이기보다는 비용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양육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출산율 반등이 이뤄질지도 모른다.” 그가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는다. 여전히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자녀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을 크게 △타고난 재능 △노동시장에서의 운(luck) △부모의 투자로 나눴다. 소득 수준이 낮았던 예전에는 부모의 투자 여력 자체는 크지 않았던 반면 호황기와 맞물려 노동시장에서의 운은 좋은 편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개인이 능력으로 성공하는 경향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저성장기에 진입하면서 해당 요인들은 통제됐다. 이제 부모의 투자는 자녀의 성공과 직결되는 ‘독립변수’가 되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하는 걸 막을 수는 없잖아요. 동시에 부모의 자원은 한정적이라 자녀마다 충분하다 싶을 만큼 투자하기도 어렵죠. 소득을 높이는 방식의 한계점입니다. 그러니 자녀 투자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양육비용을 줄여보자는 겁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아이를 엄마 혼자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아빠의 참여가 중요하다”면서 “근로시간 단축,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이 저출산 문제를 푸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출산을 바라보는 우리사회 시각이 지나치게 양적 패러다임에 갇혀있다고도 지적했다. 부양해야 할 노년층 증가, 생산가능인구 감소 같은 부정적 거시 지표만 본다는 것이다.
“물론 저출산 문제는 풀어야죠. 다만 저출산 주요인 가운데 하나가 부모의 자녀 투자라면, 청년층이 질적으로 보다 훌륭한 세대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봐요. 통계 수치에 매몰되면 이런 면은 안 보이거든요. 열린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아요.”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고소득 부부는 왜 둘째를 안 낳을까?’ 포털 사이트에 걸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둘째를 낳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은 듯했다. 저마다 사정을 털어놓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내는 《나라경제》 3월호에 실린 짤막한 보고서를, 언론은 일제히 주목했다. 가구소득과 출산율의 디커플링(비동조화) 현상 자체가 흥미로운 데다 “둘째 낳을 엄두가 안 난다”는 맞벌이 부부의 심증을 확증으로 바꾸는 설명모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저출산의 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보고서의 주인공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를 이달 7일 만났다.
“연구문제 설정이 흥미롭던데요?” 서울시립대 미래관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던진 첫 마디에 그는 “정확히는 ‘소득이 증가하는데 출산율이 감소하는 까닭은?’이라는 주제입니다”라며 웃어보였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원래 보고서에서는 소득 수준 상승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봤습니다. 고소득층이라고 하면 ‘조작적 정의’가 불분명해지거든요. 실제로 초고소득층의 경우 ‘소득 증가-출산율 감소’ 공식이 성립하지 않죠.” 보고서에 인용한 1953~20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및 합계출산율 추이를 보면 소득 증가와 출산율 감소의 교차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인구변화의 고전적 이론인 맬서스 인구론이나 다윈 진화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다. 송 교수는 인간행동과 사회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연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개리 베커의 ‘자녀 수요에 대한 경제모형’을 적용했다. 이 모형은 자녀를 몇 명 낳을지 정할 때 부모는 자녀의 수와 자질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가구가 자동차 두 대를 산다고 하자. 첫 번째 차는 고급 외제승용차로, 두 번째 차는 저렴한 중고 소형승용차를 구매한다. 합리적 수요로 이해할 수 있다. 대상이 차가 아닌 자녀라면? 부모는 달라진다. 모든 자녀의 자질이 뛰어나기를 바라는 베커 모형에서는 둘째를 낳으면 첫째와 똑같이 더 많은 투자를 한다. 결과적으로 둘째를 포기하고 대신 기존 자녀의 자질을 높이는 투자에 집중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출산율 문제를 경제학 모델로 풀어낸 게 재미있어요.”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닙니다. 경제학이 다뤄온 내용이죠.” “그런가요?” “가구에서의 노동공급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노동경제학의 주제 중 하나거든요. 자녀 출산·양육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요.” 그래도 의문이 남았다. 왜 하필 ‘둘째 절벽’일까? 경제적으로만 판단하면 아예 자녀를 한 명도 갖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 아닌가? 고전 경제학의 대전제인 합리적 행위 가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송 교수는 “자녀를 일종의 효용을 주는 재화로 간주하는 경제학 모형도 있다. 자녀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이에 속한다”고 답했다. 예전의 경제학이 다루지 않았던 것,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거시경제학은 주로 가구 단위로 분석했습니다. 그걸로는 미처 설명되지 않는 결이 있어요. 그래서 미시경제학은 그 안의 가구원 사이에 일어나는 행동 메커니즘을 분석·이해하려 했죠. 가구 단위 움직임은 내부 행위의 결과라는 관점에 입각해서요.”
그렇게 보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트렌드는 이전의 정부 주도 가족계획과 유사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180도 다른 사회경제적 맥락을 갖는다. 송 교수는 “현상 자체는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반대”라고 짚었다.
궁금해졌다. 합계출산율이 5~6명대에 달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들은 비합리적 선택을 했던 걸까. “아니죠.”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의 자녀는 일종의 자원이었거든요. 노동력도 제공하고 성인이 되면 부모도 부양했죠. 그러면서 양육비용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자녀를 많이 낳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던 거예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경제적 비용 외의 요인이 커 보인다. 고연봉 대기업 맞벌이 직원 부부는 아이 한 명, 연봉은 높지 않아도 공무원 부부는 아이 두 명. 사기업 직원은 대체로 자녀 한 명, 공기업 직원은 자녀 두 명. 성급한 일반화로 치부하기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비용 문제보다는 양육환경, 이를테면 육아휴직을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복직은 가능한지 따위가 더 중요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송 교수는 “그런 부분도 모두 ‘비용’으로 봤다”고 했다.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반드시 들어가는 경제적 고정비용은 눈에 보이는 비용이다. 보이지 않는 비용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이 직장을 그만둘 경우 치르는 기회비용 등이 해당된다.
“비용 차원으로 접근하면 명료해져요.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 한 명당 들어가는 비용도 커집니다. 여력이 있다면 자녀에 투자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소득이 높을 경우, 육아 때문에 여성이 커리어를 포기하는 기회비용도 올라가죠.”
따라서 소득을 높이기보다는 비용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양육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출산율 반등이 이뤄질지도 모른다.” 그가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는다. 여전히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자녀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을 크게 △타고난 재능 △노동시장에서의 운(luck) △부모의 투자로 나눴다. 소득 수준이 낮았던 예전에는 부모의 투자 여력 자체는 크지 않았던 반면 호황기와 맞물려 노동시장에서의 운은 좋은 편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개인이 능력으로 성공하는 경향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저성장기에 진입하면서 해당 요인들은 통제됐다. 이제 부모의 투자는 자녀의 성공과 직결되는 ‘독립변수’가 되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하는 걸 막을 수는 없잖아요. 동시에 부모의 자원은 한정적이라 자녀마다 충분하다 싶을 만큼 투자하기도 어렵죠. 소득을 높이는 방식의 한계점입니다. 그러니 자녀 투자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양육비용을 줄여보자는 겁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아이를 엄마 혼자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아빠의 참여가 중요하다”면서 “근로시간 단축,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이 저출산 문제를 푸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출산을 바라보는 우리사회 시각이 지나치게 양적 패러다임에 갇혀있다고도 지적했다. 부양해야 할 노년층 증가, 생산가능인구 감소 같은 부정적 거시 지표만 본다는 것이다.
“물론 저출산 문제는 풀어야죠. 다만 저출산 주요인 가운데 하나가 부모의 자녀 투자라면, 청년층이 질적으로 보다 훌륭한 세대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봐요. 통계 수치에 매몰되면 이런 면은 안 보이거든요. 열린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아요.”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