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일 하지 않아도 국가가 소득 보장하면 근로의욕을 떨어뜨려요
[사설] 스위스는 불발, 핀란드는 조기 종료 …입지 좁아진 '기본 소득'

핀란드가 기본소득보장제도를 2년 만에 접기로 한 것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난해부터 핀란드는 실업자 2000명에게 기존 공적부조와 별개로 매월 560유로(약 74만원)를 지급해왔다. 핀란드 정부가 내년부터 기본소득제를 중단하기로 한 것은 실업률 개선이나 근로의욕 고취 효과가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전면 실시할 경우 핀란드의 빈곤율이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도 있었다.

‘기본소득’은 16세기 이후 서구의 많은 사회사상가들이 복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온 것이다. 적극적인 복지로 여겨지면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돼온 개념이다. 노동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 무조건·획일적 지급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기존 복지제도와 많이 다르다. 요컨대 국가가 최소한의 소득은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복지팽창을 우려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쪽에서도 기본소득제의 특성이나 이점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던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다수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는 데다, 전달체계도 부실해 예산 누수가 심각한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경로에 집행 방식은 복잡하고, 복지 사각지대도 계속 드러난다면 기존 복지는 다 없애고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주장이 없지 않았다. 무차별 복지에 대한 경계에 방점이 있었겠지만, 그만큼 복지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복지 경로의 모색은 우리 시대의 큰 고민인 것이다. 물론 선거 때 정치권의 ‘기본소득 도입론’은 이 정도 논의에도 이르지 못한 인기영합적 구호였을 뿐이었다.

스위스가 기본소득 지급안을 투표로 부결시켰던 것도 이런 부작용을 내다본 것이었다. 실업 상태에서 사회보장제도에 과도하게 기대게 되면 의존성만 키우는 ‘복지의 부작용’은 어디서나 경계 대상이다. ‘세금으로 소득보장’이라는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 판정이 났지만, 핀란드가 복지제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저소득층에 소득이 일정 선에 이를 때까지 보조금을 주는 ‘역(음)소득세’도 대안으로 검토된다고 한다. 복지를 확충할 때도 근로의식 고취와 소득 격차의 자연스런 개선을 함께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저비용, 고효율·고성과’ 복지로는 갈 길이 멀다. <한국경제신문 4월26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정부가 기본소득 보장하는 정책은 논란 반복되는 보편적 복지제도
저소득층의 생계에 도움 되지만 근로의욕 저하로 실업자 늘 수도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기본소득’ 보장을 정책으로 채택한 나라다. 무수한 논쟁과 논란이 반복됐던 기본소득을 정부가 채택한 것도 주목됐지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전면적 실시에 앞서 제한적·실험적으로 적용했던 정책의 신중함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전국의 25~58세 실업자 중 무작위로 2000명을 선정해 지난해 1월부터 기본소득 개념으로 560유로씩을 매달 지급해왔다. 이를 올해 연말까지만 시행하고 다른 대안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복지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좌(左)성향의 복지개념이지만 중도우(右)파 정부가 이를 채택했다는 점도 짚어볼 만한 사실이다.

이 사설이 은근히 주목한 것도 ‘2년 만에 실패로 끝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보다, 이 복지개념은 좌우 모두가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아울러 복지의 구조조정,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복지설계가 향후 큰 과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은 ‘적은 비용으로 효과는 크게 내는’ 방식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복지 강화와 격차 해소에 큰 관심을 가진 서구의 많은 사회사상가들이 관심을 보인 개념이 기본소득이다.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파의 거두로 인정받는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도 기본소득 지지자로 분류된다. 한국에서도 자유주의적 경제발전론을 펴온 이들 중에서 기본소득에 관심 갖는 이들이 있다. 《기본소득 논란의 두 얼굴》(한국경제신문사, 2017년 5월 출간)이라는 공동저작의 책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현대국가에서 복지문제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철학과 방법론이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어떤 모델을 추구하고, 실제로 가동되는 여러 복지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정확한 소득 파악은 여전히 어려운 데다 ‘부실한 전달체계’라고 통상 말하는 지원금 누수현상이 여러 나라의 고민이다. 복지에서 앞선 북유럽에서도 상당히 흔한 일이었다.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일 하지 않아도 국가가 소득 보장하면 근로의욕을 떨어뜨려요
또 하나 핀란드의 실험에서 확인된 것은,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국가가 무조건적으로 최소한의 소득은 보장해준다는 방식이 수급자(실업자)들의 근로의식을 고취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만 많이 징수해야 할 뿐 소득 격차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처럼 유수 기업인 중에서도 시행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복잡다기한 복지프로그램에 대한 구조조정은 외면한 채 무조건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더 많은 창의적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