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들의 호소와 탄원에 귀 막은 채 기업 경영을 불확실·불투명·불안 속으로 몰아넣을 법령을 강행하기로 했다. ‘중대 재해’ 등이 발생하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경영자를 처벌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처분 기준을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구체화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를 끝내 외면한 것이다.

정부가 오늘 입법예고 예정인 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이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은 언제 어떤 기준에 걸려 공장 가동을 얼마나 멈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개정된 산안법이 작업 중지 명령 발동요건 등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해 남발될 소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과 정부가 자의적 판단이나 여론에 밀려 작업 중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기업들은 시행령과 규칙에 구체적인 작업 중지 기준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말 이런 내용을 담은 경영계 의견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반영된 게 사실상 하나도 없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업종이나 기업별로 사정이 달라 세세한 기준을 시행령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게 정부 논리인데, 다른 말로 하면 “당신(기업)들이 알아서 잘 하면 될 것 아니냐. 우리는 아쉬울 게 없다”는 배짱부리기와 다를 게 없다.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조건은 되레 강화됐다. ‘기업이 해제를 요청하면 4일 내 심의위원회를 연다’는 조항에 ‘심의위원회 구성이 어려우면 4일 내 회의를 열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기업 대표자에게 전국 각지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산업재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게 한 조항도 ‘걸리기만 해보라’는 독소(毒素) 규정으로 꼽힌다. “원청 사업주가 사업장 밖에서 이뤄지는 작업 안전을 책임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업들의 하소연을 정부는 끝내 외면했다.

한국에서 공장을 돌리는 기업가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날벼락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시장과 기업이 가장 꺼리는 게 ‘불확실성 리스크’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공포’가 기업인들을 겁박하는 지경이 됐다.

고용부가 이런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만들면서 기업들과 거의 소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훗날을 위해서도 분명히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경총이 지난달 말 의견서를 고용부에 제출한 이후 양측이 공식적으로 만난 건 단 한 차례뿐이었고, 그나마도 두 시간여 만에 회의를 끝냈다고 한다. 모법(母法)인 산안법의 개정안 자체도 졸속으로 처리된 터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가 논의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본회의를 뚝딱 통과하기까지 기업 현장은 물론 전문가들 의견을 제대로 수렴한 게 없었다.

국회와 정부가 기업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그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기업하는 자들은 잠재 범죄자’로 단정 짓고 어떻게든 억압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일방통행을 해댈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거듭된 다짐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