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험한 ILO 핵심협약 비준…"노사 간 균형 맞춰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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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 "신성한 노동기본권 보장해야" vs 使 "최소한의 경영 방어권 필요"
勞 "신성한 노동기본권 보장해야" vs 使 "최소한의 경영 방어권 필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부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노동자 측 대표와 사용자 측(경영계) 대표,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7월부터 이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결국 대립만 하다가 합의는 무산됐다. 노사는 계속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의견차가 좁혀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ILO핵심 협약이 앞으로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노동계 요구는 대폭 수용, 경영계 요구는 부분 수용
ILO 협약은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노동기준으로 모두 189개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ILO의 핵심가치를 반영한 기본협약, 이른바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처우 등에 관한 8개로 한국은 이 중 4개를 이미 비준한 상태다.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협약(87, 98호)과 강제근로 금지에 관한 협약(29, 105호)이다.
경사노위가 논의하는 대상은 이 두 가지 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의 비준과 관련된 문제다. 이 조항은 노조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 노조의 활동 범위 등을 대폭 확대하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허용이 안 되는 비근로자의 노조 가입도 이 조항을 적용하면 가능해질 수 있다.
노사가 이에 대한 조속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강제 조항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로서는 신뢰 유지를 위해서라도 비준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일단 노사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경사노위에서 노·사 양측의 중재 역할을 맡는 공익위원들이 의견을 냈다. 해고자·실직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공무원의 노조 가입대상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경영계와 학계 일부에선 “정부가 노동계에 편향된 공익위원들을 뽑아놔서 이들이 노동계의 요구는 대폭 수용한 반면 경영계가 요구한 핵심 사안은 외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 지금은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노조가 될 수 있다. 공무원은 현재 6급 이하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데,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 등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단체행동권은 제한해 파업은 할 수 없다.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등 쟁점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대신 국제 관행에 맞지 않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며 다섯 가지를 요구했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파업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파업 찬반투표 유효기간 도입 등이다.
공익위원들은 이 가운데 단체협상 유효기간 연장(2년→3년)과 사업장 점거 파업 제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노조 파업 때 사업장 점거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용자 재산권도 보호해야 하지만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일하고 싶어하는 근로자의 조업권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이런 경영계의 요구가 제한적이나마 받아들여진 것은 다행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핵심 요구사항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 형사처벌 폐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영계에서 경사노위를 두고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매우 드물다. 한국 외에 미국, 일본도 노조법에 부당노동행위 규제를 두고 있지만 이를 이유로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노사 당사자 간 관계를 다루는 노조법은 분쟁이 발생한 경우 원상회복을 원칙으로 한다. 노사관계에 국가 차원의 형벌권이 개입되면 노사관계 복원에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근로 허용 요구는 노조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사업장이 최소한으로는 운영되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현행법으로는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유일한 대항수단은 직장을 폐쇄하는 것뿐이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때가 됐다는 데는 노사 간 이견이 거의 없다. 하지만 노동계는 조건 없는 비준을, 경영계는 최소한의 경영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부담 때문에 내심 경영계의 양보를 기대하면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다음달이면 국회로 넘어가게 될 ILO 핵심협약 비준 논쟁,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보자.
■NIE 포인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정리해보자. ‘무조건 비준’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조건부 비준’을 주장하는 경영계의 논리를 비교해보자.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기업의 경영권 중 어떤 것이 우선인지 입장을 바꿔가며 토론해보자.
백승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노동계 요구는 대폭 수용, 경영계 요구는 부분 수용
ILO 협약은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노동기준으로 모두 189개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ILO의 핵심가치를 반영한 기본협약, 이른바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처우 등에 관한 8개로 한국은 이 중 4개를 이미 비준한 상태다.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협약(87, 98호)과 강제근로 금지에 관한 협약(29, 105호)이다.
경사노위가 논의하는 대상은 이 두 가지 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의 비준과 관련된 문제다. 이 조항은 노조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 노조의 활동 범위 등을 대폭 확대하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허용이 안 되는 비근로자의 노조 가입도 이 조항을 적용하면 가능해질 수 있다.
노사가 이에 대한 조속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강제 조항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로서는 신뢰 유지를 위해서라도 비준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일단 노사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경사노위에서 노·사 양측의 중재 역할을 맡는 공익위원들이 의견을 냈다. 해고자·실직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공무원의 노조 가입대상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경영계와 학계 일부에선 “정부가 노동계에 편향된 공익위원들을 뽑아놔서 이들이 노동계의 요구는 대폭 수용한 반면 경영계가 요구한 핵심 사안은 외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 지금은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노조가 될 수 있다. 공무원은 현재 6급 이하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데,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 등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단체행동권은 제한해 파업은 할 수 없다.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등 쟁점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대신 국제 관행에 맞지 않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며 다섯 가지를 요구했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파업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파업 찬반투표 유효기간 도입 등이다.
공익위원들은 이 가운데 단체협상 유효기간 연장(2년→3년)과 사업장 점거 파업 제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노조 파업 때 사업장 점거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용자 재산권도 보호해야 하지만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일하고 싶어하는 근로자의 조업권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이런 경영계의 요구가 제한적이나마 받아들여진 것은 다행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핵심 요구사항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 형사처벌 폐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영계에서 경사노위를 두고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매우 드물다. 한국 외에 미국, 일본도 노조법에 부당노동행위 규제를 두고 있지만 이를 이유로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노사 당사자 간 관계를 다루는 노조법은 분쟁이 발생한 경우 원상회복을 원칙으로 한다. 노사관계에 국가 차원의 형벌권이 개입되면 노사관계 복원에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근로 허용 요구는 노조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사업장이 최소한으로는 운영되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현행법으로는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유일한 대항수단은 직장을 폐쇄하는 것뿐이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때가 됐다는 데는 노사 간 이견이 거의 없다. 하지만 노동계는 조건 없는 비준을, 경영계는 최소한의 경영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부담 때문에 내심 경영계의 양보를 기대하면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다음달이면 국회로 넘어가게 될 ILO 핵심협약 비준 논쟁,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보자.
■NIE 포인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정리해보자. ‘무조건 비준’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조건부 비준’을 주장하는 경영계의 논리를 비교해보자.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기업의 경영권 중 어떤 것이 우선인지 입장을 바꿔가며 토론해보자.
백승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