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K로봇 - (1) '외화내빈' 한국 시장
선수가 없다
단순 운반, 조립 로봇을 빼고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7년 제작된 제조업용 로봇 중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협동로봇은 550대에 불과했다. 협동로봇은 근로자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로봇을 의미한다. 정밀센서로 근로자의 상태를 확인해 그때그때 동선을 바꾸는 게 특징이다.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 로봇 시장은 크지 않다. 전체 로봇 시장(5조5255억원)의 10% 남짓인 6072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절반 가까이가 로봇청소기를 비롯한 가사용 로봇(2317억원)이 차지하고 있다. 전문 서비스 로봇 중 시장다운 시장이 형성된 분야는 의료로봇(834억원) 정도다. 로봇 업계에서 “제대로 된 국산 로봇은 산업용 기계와 청소기뿐”이란 자조 어린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연구개발(R&D)에 돈을 쓸 ‘선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국내 로봇 생산업체 2191개 중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 2126개(97.0%)에 이른다. 대기업은 8개(0.4%)뿐이다.
영세한 기업은 R&D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전체 로봇 생산업체 중 R&D사업 실적이 있는 곳은 31%에 불과하며, 이들이 쓴 비용은 3794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삼성전자 단일 기업이 쓴 R&D 비용(18조6000억원)의 50분의 1 수준이다. 그중 2616억원이 정부 지원금이었다. 고급 인력도 드물다. 2만9000여 명에 달하는 로봇산업 종사자 중 박사급 R&D 인력은 493명(박사과정 재학생 포함)뿐이다.
규정이 없다
‘배달의민족’ 브랜드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의 엔지니어들은 요즘 도로교통법 관리를 받지 않는 사유지를 뒤지는 게 일과다. 도로 테스트 단계인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실제 도로 시험은 엄두도 못 낸다. 무인이송 로봇과 관련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무인이송 로봇은 차량으로 분류되지 않아 도로주행이 불가능하다. 인도 통행 역시 안 된다. 안전 기준, 속도 등의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 법과 규정이 과학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달로봇의 공공도로 시험을 더 미루기 힘든 상황”이라며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규제 없이 2년간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증특례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로봇 관련 규정은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무인이송 로봇처럼 관련 규정이 없는 분야가 적잖다. 원격제어가 가능한 중장비 로봇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중장비 로봇은 건설기계로 분류되는데 의무적으로 운전자를 둬야 한다. 원격 제어 기능을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운전자 건설기계 면허제도, 건설기계 안전규정 등을 통째로 손봐야 한다.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정 요건을 갖춘 기업이 자유롭게 자율주행 로봇을 테스트할 수 있게 한 미국, 원격제어 로봇과 관련된 법령을 일찍 마련한 유럽 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스터 플랜’이 없다
국내에서 로봇 R&D를 총괄하는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다. 2009년 ‘제1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5년마다 로봇 R&D 정책 방향을 새로 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오랫동안 힘겨루기한 끝에 국가 R&D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잡았다. 로봇은 기초과학이 아니라는 산업부의 논리가 통했다는 게 과학기술계 설명이다. 과기정통부는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인공지능(AI)과 액추에이터(모터·센서 등으로 구성된 구동기 모듈) 등 로봇부품 기초연구만 담당하고 있다.
제조업용 로봇 R&D와 관련해서는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AI 등 첨단기술이 접목된 로봇과 관련해서는 부처 간 힘겨루기가 여전하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가까스로 ‘로봇·AI 융합 원천기술 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펼치는 데 합의했다. 한 공과대학의 로봇담당 교수는 “AI 로봇 프로젝트를 산업부와 하려면 과기정통부에서, 과기정통부와 하려면 산업부에서 항의가 들어온다”며 “AI 로봇 R&D와 관련한 마스터 플랜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기초연구 지원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봇의 관절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는 물론 그 안에 들어가는 모터까지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기본 기술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