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서 접하는 번개와 같아
사실이다. 포도알 두 개를 붙이고 접시에 올려 투명한 컵을 엎은 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컵 안을 가득 채우는 섬광(사진)을 목격할 수 있다. 포도알이 타서 나오는 불꽃이 아니라 플라즈마다.
플라즈마는 고체 액체 기체에 이은 물질의 네 번째 상태를 말한다. 원자에서 전자가 떨어져나가 이온화된 상태를 플라즈마라고 한다. 지구 밖 우주 물질의 99%는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플라즈마가 번개다.
포도 플라즈마는 포도알 크기와 포도알의 수분 함유량(70%) 조건이 만나 만들어낸 마술 같은 현상이다. 7일 국가핵융합연구소에 따르면 아론 슬렙코브 캐나다 트렌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파블로 비아누치 콘코디아대 물리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3월호에 포도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플라즈마가 발생하는 원리를 게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 파장 길이는 12㎝ 정도다. 파동은 통과하는 물질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70% 수분을 함유한 포도알에서 마이크로파 파장 길이는 1.2㎝ 정도로 10분의 1 가까이 짧아진다. 마이크로파는 포도알 안쪽에서 이리저리 튕기면서 포도알을 안쪽부터 가열한다. 포도알 두 개를 붙여넣고 가열하면 경계면 중앙에 가장 강한 전자기장이 형성된다. 포도알이 전자기파를 묶어두기에 ‘가장 적절한 굴절률과 크기’를 갖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증폭된 전자기파가 두 포도알 가운데 ‘핫스폿’에 집중되면서 분자와 원자가 가열되고 이온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전자레인지 내부 기체와 부딪쳐 플라즈마가 방출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마이크로 대역에서 나타나는 ‘형태 의존 공명’이라고 불렀다.
자연계 물체가 힘을 받으면 매초 물체 고유의 진동수만큼 떨리는데 이를 섭동이라고 한다. 섭동을 넘어,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의 주기가 물체가 갖는 고유 진동수와 같으면 진동이 더 커지는 공명현상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포도알 플라즈마 발생 원리를 나노광학 분야에 응용하면 전자칩을 더 작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