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한 방에 25억원…희귀병 신약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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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한번으로 완치된다지만
건보 혜택 없어 100% 본인 부담
환자들 "약값에 살림 파탄날 판"
건보는 적립금 3년 연속 적자
극소수 환자에 재원 집중 '난색'
건보 혜택 없어 100% 본인 부담
환자들 "약값에 살림 파탄날 판"
건보는 적립금 3년 연속 적자
극소수 환자에 재원 집중 '난색'
졸겐스마(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사진) 25억원, 킴리아(혈액암 치료제) 5억원, 빈다맥스(심근병증 치료제) 2억5000만원….
최근 1년 동안 국내에서 처방 허가가 난 ‘억’소리 나는 신약들이다. 공통점은 △약효는 뛰어나지만 △너무 비싸고 △건강보험 적용도 안 돼 환자가 100%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민에겐 ‘그림의 떡’인 셈. 환자 수도 많고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고혈압약과 달리 연간 수백 명 정도의 극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맞춤형으로 제조하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게 제약사들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중증·희귀질환 환자 사이에선 “치료받으면서 가장 두려운 건 약물독성(drug toxicity)이 아니라 약값을 대느라 살림이 파탄나는 자금독성(financial toxicity)” “암으로 죽지 않으면 약값으로 죽는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화이자의 ‘빈다맥스’도 1년째 건보 문만 두드리고 있다. 이 약은 심장이나 간 이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 환자에게 수술 없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워낙 비싼 데다 희귀질환이란 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미국 MSD)와 폐암치료제 ‘타그리소’(영국 아스트라제네카)도 고가 치료제로 꼽힌다. 이들 약은 일부 적응증과 2차 치료에 쓸 때만 건보 급여 대상이다. 비급여 시 연간 치료비가 수천만~1억원에 달한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킴리아나 빈다맥스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제약업계는 ‘고가약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국내외 기업들이 치료 효과는 좋지만 값비싼 개인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어서다.
약값 인하는 자본주의 작동 원리에 배치되는 만큼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제약사에 저가 판매를 강제하면 향후 누구도 신약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현실적인 방안은 건보 등재다. 암 등 중증질환 또는 희귀질환 치료제가 건보에 등재되면 약값의 90~95%를 건보가 내는 만큼 환자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문제는 재원과 형평성이다. ‘문재인 케어’ 여파로 건보 재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극소수 환자에게 너무 많은 돈이 집중 투입되기 때문이다. 건보 적립금은 3년 연속 적자로 인해 2017년 20조7733억원에서 지난해 말 17조418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고가 약이 많이 나오면서 건보에서 약품비로 빠져나간 돈은 2010년 13조5380억원에서 2019년 20조8760억원으로 9년간 54.2% 상승했다. 중증 환자 혜택을 늘리려면 감기 등 경증질환과 당뇨 등 만성질환의 본인 부담비를 올려야 하지만, 수혜자가 많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졸겐스마, 킴리아 등에 건보 등재의 물꼬를 터주면 앞으로 나올 수많은 혁신신약을 내칠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도 정부로선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가파른 약값 상승은 기정사실인 만큼 정부가 건보정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증환자에게 일단 건보 혜택을 준 뒤 추후 치료 효과를 평가해 제약사와 정산하는 성과평가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 비용을 복권기금에서 충당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심평원 관계자는 “혁신신약의 치료 효과와 건보 부담을 고려해 급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상헌/이선아 기자 ohyeah@hankyung.com
최근 1년 동안 국내에서 처방 허가가 난 ‘억’소리 나는 신약들이다. 공통점은 △약효는 뛰어나지만 △너무 비싸고 △건강보험 적용도 안 돼 환자가 100%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민에겐 ‘그림의 떡’인 셈. 환자 수도 많고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고혈압약과 달리 연간 수백 명 정도의 극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맞춤형으로 제조하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게 제약사들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중증·희귀질환 환자 사이에선 “치료받으면서 가장 두려운 건 약물독성(drug toxicity)이 아니라 약값을 대느라 살림이 파탄나는 자금독성(financial toxicity)” “암으로 죽지 않으면 약값으로 죽는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줄줄이 나오는 ‘초고가 신약’
1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조만간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열고 노바티스가 개발한 졸겐스마에 대한 건보 등재 여부를 논의키로 했다. 이 약은 환자의 90%가 두 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주사 한 방으로 완치시킬 수 있는 혁신 신약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인 탓에 단번에 건보 벽을 뚫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꿈의 항암제’로 불리는 노바티스의 킴리아도 지난 1일 건보 심사 테이블에 올랐지만 ‘보류’ 판정을 받았다. 킴리아는 환자 몸에 있는 T세포(면역세포)를 조작해 유도탄처럼 암세포만 찾아 공격하는 신개념 치료제다. 노바티스는 서류를 보완해 재도전에 나설 계획이다.화이자의 ‘빈다맥스’도 1년째 건보 문만 두드리고 있다. 이 약은 심장이나 간 이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 환자에게 수술 없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워낙 비싼 데다 희귀질환이란 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미국 MSD)와 폐암치료제 ‘타그리소’(영국 아스트라제네카)도 고가 치료제로 꼽힌다. 이들 약은 일부 적응증과 2차 치료에 쓸 때만 건보 급여 대상이다. 비급여 시 연간 치료비가 수천만~1억원에 달한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킴리아나 빈다맥스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제약업계는 ‘고가약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국내외 기업들이 치료 효과는 좋지만 값비싼 개인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어서다.
건보 등재 놓고 고민에 빠진 정부
이들 초고가 신약에 대한 사용 허가는 났지만, 너무 비싼 탓에 실제 처방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혁신신약이 이름값을 하려면 제약사가 약값을 대폭 내리거나 건보에 등재하는 방법밖에 없다.약값 인하는 자본주의 작동 원리에 배치되는 만큼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제약사에 저가 판매를 강제하면 향후 누구도 신약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현실적인 방안은 건보 등재다. 암 등 중증질환 또는 희귀질환 치료제가 건보에 등재되면 약값의 90~95%를 건보가 내는 만큼 환자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문제는 재원과 형평성이다. ‘문재인 케어’ 여파로 건보 재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극소수 환자에게 너무 많은 돈이 집중 투입되기 때문이다. 건보 적립금은 3년 연속 적자로 인해 2017년 20조7733억원에서 지난해 말 17조418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고가 약이 많이 나오면서 건보에서 약품비로 빠져나간 돈은 2010년 13조5380억원에서 2019년 20조8760억원으로 9년간 54.2% 상승했다. 중증 환자 혜택을 늘리려면 감기 등 경증질환과 당뇨 등 만성질환의 본인 부담비를 올려야 하지만, 수혜자가 많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졸겐스마, 킴리아 등에 건보 등재의 물꼬를 터주면 앞으로 나올 수많은 혁신신약을 내칠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도 정부로선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가파른 약값 상승은 기정사실인 만큼 정부가 건보정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증환자에게 일단 건보 혜택을 준 뒤 추후 치료 효과를 평가해 제약사와 정산하는 성과평가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 비용을 복권기금에서 충당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심평원 관계자는 “혁신신약의 치료 효과와 건보 부담을 고려해 급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상헌/이선아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