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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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대출 이자를 내기 위한 것, 자산은 투자로 불린다"
"제2금융권 대출까지 최대한 빌려 아파트를 사라"

2·30대 직장인들이 주로 가는 인터넷 재테크 사이트에서 대출과 관련해 흔히 보이는 이야기다. 2020년을 전후해 빚투와 영끌의 주력으로 떠오른 지금의 젊은 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대출에 적극적인 세대다.

이는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50세를 전후해 최고점을 찍던 연령별 가계대출 규모가 30대 중반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세대에 비해 대출을 잘 활용하게 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산가격이 급락할 경우 장기 불황 진입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계대출 정점, 50대에서 30대로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노동패널 통계를 분석해 연도별로 연령별 가계대출규모를 집계했다. 20~24세, 25~29세 등 다섯살씩 끊어 각 연령대에서 평균 얼마 정도의 빚을 내고 있는지 살펴본 것이다.
우선 노동패널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8년부터 2010년 이전까지는 일정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연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45~55세까지 가계부채가 완만하게 상승해 이후에는 조금씩 줄어드는 봉우리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일반적으로 주택 구입과 함께 불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대 중후반부터 사회생활을 하며 형성한 종잣돈을 바탕으로 40대 중반 이후에 집값의 일부를 대출 받아 주택을 구매하는 사례가 많았음을 방증한다.

45~55세는 생애를 통틀어 소득이 가장 많은 구간이기도 하다. 이같은 소득을 바탕으로 대출을 상환하며 이후에는 가계 대출 규모가 줄어드는 양상을 나타낸다. 다만 가계대출 규모 증가에 맞춰 봉우리가 높아지고 장년 이후 대출 잔액 감소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모습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3년에는 양상이 조금 바뀐다. 가장 많은 가계대출을 보유한 연령층이 55~60세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연령별 가계대출 그래프의 꼭지점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2013년 서울 및 수도권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심각했던 점을 감안하면 주택 매각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결과로 분석된다. 퇴직과 은퇴 등으로 경제 일선에서 물러나며 주택을 처분하거나 줄여서 대출을 상환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후 집값이 오르면서 연령별 가계대출의 꼭지점은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2019년에는 35~45세가 가장 높은 수준의 가계대출을 기록하게 된다. 30대가 가장 많은 가계대출을 보유하게 된 것은 1998년 조사 이래 처음이다.

구체적으로는 40~44세가 1인당 5771만원의 부채를 져 가장 가계대출 부담이 높았다. 다음으로 35~39세가 5768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전통적으로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컸던 50~54세의 가계대출 부담은 4938만원이었고, 55~59세는 4311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올해는 20대와 30대의 영끌 주택 구입이 이어진만큼 꼭지점은 더욱 왼쪽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과 함께 빚도 다음 세대로 이전

이같은 연령별 가계대출 꼭지점 이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사를 한 하준경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장년층이 매각한 부동산을 사거나 부모에게 증여 받는 과정에서 30대의 빚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집을 넘긴 50대는 빚을 갚으면서 부채 부담이 감소하고, 이를 떠안은 30대는 빚이 늘어나는 것이다.

세대간 부동산 이전은 결국 해당 세대의 인구가 적을수록 부채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구조적으로 이전 세대의 부채와 자산을 함께 넘겨 받게 되는데 같은 세대의 숫자가 윗 세대보다 적을수록 1인당 져야할 빚이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저출산 및 인구감소와 맞물려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0대와 20대 인구는 더 급격히 줄어드는만큼 30대의 자산과 부채를 받아주기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집값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세대 이전 실패로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시화되면 지금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30대의 부채 부담이 만성적인 소비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부채는 그대로 남아 있는만큼 소득의 일정 부분을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며 소비는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오윤해 KDI 연구원의 분석이다.

"젊은 세대가 대출을 일으켜 집을 구입하고 차차 상환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경제생활을 할 시간이 많이 남아 대출 상환도 충분히 가능한 연령대가 집을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일으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중장년층의 가계대출이 많은 구조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특이한 것이었다. 연금 등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가운데 노후 대비를 위해 부동산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장년층 이후로 대출이 줄어든 것은 대출 정책 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단순히 자산만 있었다면 대출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DSR 규제 등으로 어느 정도 소득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상만 봐서 될 문제가 아니긴 하다. 빚으로 구입한 자산이 폭락하면 가계와 경제 시스템 전반이 위험해질 수 있다."

팽창한 가계 빚에 자산시장 침체가 맞물릴 때

최근 집값 상승은 전례없이 길고 큰 폭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대상 지역도 과거에 비해 넓다. 2000년대 중반 집값 상승이 '버블 세븐'을 비롯해 수도권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면 이번 집값 상승은 수도권 변두리와 지방 주요 도시 집값까지 한꺼번에 밀어올렸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 주택을 구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600조원을 넘어선 누적 가계 대출 규모는 이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계대출 증가에 따른 문제로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하지만 집값 하락은 이미 가계부채가 팽창할대로 팽창해 있는 가운데 경제 전반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자산이든 영원히 오를 수는 없다. 자산 투자 열풍이 지나간 뒤 남은 가계대출이 불러올 경제 부작용에 대해 고민할 때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