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이 먼저다
신병교육대에 가면 ‘훈련 시 땀, 전투 시 피’라는 문구가 있다. 훈련 중에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전투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과 같다는 의미로 전쟁 발생 시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덜 흘리기 위해서는 평상시 땀을 한 방울이라도 더 흘려가며 실전과 같이 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난도 마찬가지다. 화재, 지진 등 각종 재난재해에 대비해 꾸준히 대응훈련을 해 안전습관을 체득하는 것만이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는 왕도다.

그러나 준비 없이 맞이한 전쟁의 결말이 뻔하듯 지난해 11월15일 지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나라는 규모 5.4의 강진으로 인해 민간주택 피해만 2만6000건에 달하는 등 재산피해액이 550억원을 넘었다.

일본의 경우 잦은 지진으로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유아 때부터 체계적인 안전교육을 하는 등 지진에 대한 상시 대응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 여겨온 안일한 인식 탓에 대비가 부실해 피해를 더욱 키웠다.

특히 일본에선 학교 건물이 대피소로도 사용돼 최고 수준의 내진설계로 가장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 중 하나이지만, 우리나라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일 하루 전날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학교 역시 지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학생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수능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무비유환(無備有患)이 불러온 재난으로 얼마나 큰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화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화재로 인한 사망자 306명 중 절반 이상이 주택화재로 사망했다. 가정마다 화재를 초기에 발견할 수 있는 감지기와 신속하게 불을 끌 수 있는 소화기만 제대로 구비하고 있었다면 화재로 사망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부터 모든 주택 내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설치율이 30%대에 불과한 현실을 보면 아직도 교훈이 더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20세기 전반 할리우드 영화를 이끈 영화감독 세실 데밀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법칙을 깨뜨릴 수 없다. 단지 법칙을 거스르는 우리 자신을 깨뜨릴 수 있을 뿐이다. ” 아무런 대비나 훈련 없이 재난재해로부터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방법은 없다. 이제는 안전에 무관심했던 낡은 우리 자신을 먼저 깨뜨려야 할 때다.

김명현 < 한국소방안전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