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비를 내리지는 않으나 사람의 눈앞을 가릴 때가 많아 안개는 여러 기상(氣象)의 하나로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른다. 연무(煙霧)라는 표현도 그 하나다. 앞의 煙(연)은 무엇인가를 태울 때 피어오르는 연기(煙氣)가 대표 새김이긴 하다. 그러나 산의 주변이나 들녘 상공에 자욱하게 끼는 ‘이내’로 이해해야 좋을 때가 있다. 이내는 흔히 한자 嵐氣(남기)로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연월(煙月)이라고 적는 한자 단어는 ‘연기에 가린 달’로 풀면 정답이 아니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끼어 있어 희미하게 보이는 달로 새겨야 한다.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는 성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넓고 평탄한 거리(康衢)와 이내 낀 날의 달빛(煙月)을 우선 가리킨다. 이어 전란과 재난이 비켜간 평화로운 시절이라는 의미를 얻었다. 안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람들이 꺼리던 현상의 하나는 (매)다. 우리는 흔히 이를 ‘흙비’라고 푼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요즘 중국에서는 이를 스모그(smog)로 이해한다. 공기 속의 먼지와 가스가 안개와 뭉쳐지는 현상이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한반도에 들어오는 미세먼지의 원천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어쩌면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멀지 않은 거리도 살필 수 없을 만큼 안개 자욱하게 낀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태 말이다. 미세먼지의 공포, 가야 할 길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계(視界)의 불투명함이 겹친 형국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아주 먼데도 우리는 늘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