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한의사가 엑스레이, 초음파 등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는 4년 전 보건의료 규제 기요틴(단두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의사가 이 같은 의료기기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찬성하는 한의사와 반대하는 의사 간 갈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맞짱 토론]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 허용해야 하나
한의사는 현행 한의사 교육 과정에 영상의학, 방사선학 등이 포함돼 있고 의료기기 사용 방법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가 한의원에서 진단용 의료기기로 진단받으면 치료 불편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기 활용 등으로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면 한의사가 해외에 진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한의사 측 주장이다.

반면 의사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의학과 한의학으로 양분돼 있는 현행 의료체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쓰려면 의학과 한의학을 현대의학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게 의사 주장이다. 영상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쓰면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제때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쳐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찬성] 한의대서도 의료기기 교육·실습… 이중진료 불편 줄고 의료비 절감
다양한 데이터 축적 통해 한의약 세계화 기여


[맞짱 토론]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 허용해야 하나
2014년 12월 정부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규제’를 반드시 혁파해야 할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로 선정하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혔으나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보건의료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한의사는 왜 의료기기 사용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일까.

첫째, 한의사는 의료기기를 자유롭게 활용할 자격이 있는 의료인이기 때문이다. 의료 관련법에 한의사는 의료인으로서 환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적절한 보건의료 기술과 치료 재료 등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한의사는 의료기기 사용에 불합리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의과대학에서는 영상의학, 방사선학 등을 교육하고 있으며 전문과목별로 의료기기 실습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12년 한의사가 안압측정기 등 5종의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서울고등법원도 2016년 “과학기술 발전으로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없고 교육돼 있다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하다”며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은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둘째, 환자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진료선택권의 제한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최근 5년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80% 이상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찬성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회에서도 2013~2017년 국정감사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여야 의원 지적이 20회 이상 이어졌다. 특히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원 등에 내원한 환자가 엑스레이 같은 영상진단을 위해 양방 병의원을 방문했다가 다시 한의 의료기관으로 돌아와 치료받는 불필요함을 없앨 수 있다. 국민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의료선택권도 보장할 수 있다.

셋째, 한의약의 세계화와 이를 통한 국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으로 한의약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한의약의 현대화와 과학화를 입증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결과와 학술논문 등이 발표되면 한의약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다. 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으로 의료기기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고 1만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헌법에 중의학 발전을 명시하고 중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등 중의학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 전통의약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우리도 이 같은 사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충분한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음에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양의계의 악의적인 폄훼, 집요한 방해로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은 최상의 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 한의사 2만5000명은 이를 위해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한의사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대표적 규제인 의료기기 사용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이제는 정부가 국민의 편에 서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며 국민을 위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맞짱 토론]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 허용해야 하나
[반대] 영상의학 전문지식 없는 한의사, 진단 잘못해 국민건강 위협 우려
현행 의료체계·의료인 면허제도 근간 흔들어


[맞짱 토론]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 허용해야 하나
한의사에게 의과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려는 시도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이 같은 시도는 지난해 절정에 달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잇따라 한의사에게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 발의 직후 의료계는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이후에도 법률개정안이 철회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엑스레이를 포함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는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일련의 진료행위다. 사진기로 촬영하는 일반 사진과는 차원이 다르다.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는 기기의 특성상 환자에게 방사선 피폭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피폭을 최소화하면서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영상의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영상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면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환자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의사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한 사례에 대한 법원 판단이나 행정기관 해석을 보면 의사·치과의사 혹은 의사·치과의사의 지도·감독을 받는 방사선사 외에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의사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 면허 범위를 벗어난 ‘불법행위’라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북한 귀순병의 목숨을 살린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교수가 침을 놓고 한약을 지어서 환자를 치료한다고 하면 한의사가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의사는 의사의 고유 업무가 있고 한의사는 한의사 고유 업무가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 면허제도는 의료행위와 한방 의료행위를 명확하게 구분한 이원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로 대표되는 의과 의료기기를 한의사에게 사용하도록 하려는 것은 현행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의료인 면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처사다.

이처럼 ‘국민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중요한 문제를 무시하고 법률안이 발의되고 정책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의 의사이자 대한의사협회 회장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특히 의사에게만 사용이 허용된 의과 의료기기를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한의사에게 허용하려는 것은 의학과 한의학을 구분하고 있는 현행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며 의료인 면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의사가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면 그 해법은 의료일원화일 것이다. 한의학은 그 이론과 체계가 의학과 매우 달라 질병의 원인 설명과 치료 결정에 있어 국민이 혼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의학은 하나’라는 대명제 아래 근거 중심의 현대의학으로 의료일원화가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교육 과정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기존 면허 소지자에 대해서는 현행 면허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되 한의과대학 신입생 모집은 중지해야 할 것이다.
[맞짱 토론]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 허용해야 하나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