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22)] 바틱, 印尼 문화외교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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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지난달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은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인 바틱(Batik)으로 물결쳤다. 바틱을 입은 것은 안보리 5월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레트노 마루수다 외교장관과 그의 수행원만이 아니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미국, 중국, 프랑스, 독일, 페루, 코트디부아르, 도미니카공화국 등 안보리 상임·비상임 이사국 대표들이 저마다의 바틱 패션으로 하나 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엔 무대에 문화적 감성외교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2019~2020년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인 인도네시아는 영어 알파벳 국가 이름 순서로 매달 번갈아 맡는 5월 의장국을 수임했고, 그날의 토의 의제는 유엔 평화유지 활동 개선방안이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그의 ‘평화유지 액션 이니셔티브’로 유엔 평화유지 활동, 특히 여성의 역할 강화에 관심을 보여왔다. 인도네시아는 평화유지군 파견 124개국 중 여덟 번째로 큰 기여국이다. 현재 3080명을 파견했는데 연말까지 4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연초에는 100명의 여성을 파견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와 소유권 분쟁도
인도네시아인의 바틱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은 대단하다. 바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촉발된 것은 바틱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다. 2009년 말레이시아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32초짜리 홍보영상에 ‘펜뎃’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힌두사원 전통무용이 등장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를 자국 문화를 슬쩍하려는 말레이시아의 또 다른 시도로 간주했다. 말레이시아 문화장관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사과 서한을 보내고, 디스커버리 채널이 공식 사과와 함께 관련 영상을 즉각 삭제했지만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두 나라가 문화유산을 두고 논쟁을 벌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두 나라 간 문화아이콘 소유권 분쟁은 2000년 초부터 시작됐다. 바틱, 민요, 그림자극(劇) ‘와양’, 전통 칼 ‘크리스’, 대나무 악기 ‘앙클룽’ 등에 대해 양국의 소유권 주장과 반박이 오갔다. 그러던 차에 디스커버리 사건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급기야 2009년 인도네시아의 신청으로 바틱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인도네시아는 이날을 기념해 10월 2일을 ‘바틱의 날’로 지정했다. 이제 공무원들은 금요일 또는 지정된 요일에 모두 바틱을 착용하고, 일반 회사도 근로자들이 바틱을 입도록 권장하며, 많은 학교가 바틱을 교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바틱은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의상은 그 사회의 사상과 가치를 담은 문화 요소이긴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바틱은 이를 넘어서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가치를 높여 왔다. 바틱은 밀랍의 저항력을 이용한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법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바틱 기법으로 만든 의상과 제품을 총칭한다. 바틱은 15, 16세기 자바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바 문화인 바틱이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국민 문화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다종족·다문화 사회인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통합된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바틱을 이용했다. 수카르노는 모티프, 색상, 염색법 등 지역색이 강한 바틱을 조화시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바틱 인도네시아’로 승화시켰다. 수하르토 대통령 재임 중에는 남성의 긴소매 바틱 셔츠가 정식복장으로 인정되는 등 바틱 착용이 더 확산됐다. 바틱을 특히 좋아했던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1년 자카르타에서 ‘국제 바틱 서밋’을 개최하고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첫 번째 상징물로 바틱을 언급하며 이를 문화·경제·외교적 측면에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바틱은 인도네시아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해 국제적인 위상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사회·외교적인 의미를 더해갔다.
다종족·다문화 사회 통합 수단
전통의상을 중시하는 태도는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바롱’, 미얀마의 ‘론지’, 베트남의 ‘아오자이’, 태국의 ‘쑤타이’, 말레이시아의 ‘바주 말라유(Baju Melayu)’, 라오스의 ‘씬(Sinh)’, 캄보디아의 ‘사롱’ 등을 꼽을 수 있다. 전통의상은 유용한 외교 수단이기도 하다.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세계 정상들이 바틱을 착용한 이후 APEC 정상회의에서는 개최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이 관례화됐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때는 각국 정상이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했을 때 조코위 대통령은 쇼핑센터에서 바틱을 구매해 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같이 착용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정신·문화의 상징인 바틱은 명실상부한 인도네시아 외교의 첨병이 되고 있다.
2019~2020년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인 인도네시아는 영어 알파벳 국가 이름 순서로 매달 번갈아 맡는 5월 의장국을 수임했고, 그날의 토의 의제는 유엔 평화유지 활동 개선방안이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그의 ‘평화유지 액션 이니셔티브’로 유엔 평화유지 활동, 특히 여성의 역할 강화에 관심을 보여왔다. 인도네시아는 평화유지군 파견 124개국 중 여덟 번째로 큰 기여국이다. 현재 3080명을 파견했는데 연말까지 4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연초에는 100명의 여성을 파견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와 소유권 분쟁도
인도네시아인의 바틱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은 대단하다. 바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촉발된 것은 바틱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다. 2009년 말레이시아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32초짜리 홍보영상에 ‘펜뎃’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힌두사원 전통무용이 등장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를 자국 문화를 슬쩍하려는 말레이시아의 또 다른 시도로 간주했다. 말레이시아 문화장관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사과 서한을 보내고, 디스커버리 채널이 공식 사과와 함께 관련 영상을 즉각 삭제했지만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두 나라가 문화유산을 두고 논쟁을 벌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두 나라 간 문화아이콘 소유권 분쟁은 2000년 초부터 시작됐다. 바틱, 민요, 그림자극(劇) ‘와양’, 전통 칼 ‘크리스’, 대나무 악기 ‘앙클룽’ 등에 대해 양국의 소유권 주장과 반박이 오갔다. 그러던 차에 디스커버리 사건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급기야 2009년 인도네시아의 신청으로 바틱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인도네시아는 이날을 기념해 10월 2일을 ‘바틱의 날’로 지정했다. 이제 공무원들은 금요일 또는 지정된 요일에 모두 바틱을 착용하고, 일반 회사도 근로자들이 바틱을 입도록 권장하며, 많은 학교가 바틱을 교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바틱은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의상은 그 사회의 사상과 가치를 담은 문화 요소이긴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바틱은 이를 넘어서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가치를 높여 왔다. 바틱은 밀랍의 저항력을 이용한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법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바틱 기법으로 만든 의상과 제품을 총칭한다. 바틱은 15, 16세기 자바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바 문화인 바틱이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국민 문화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다종족·다문화 사회인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통합된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바틱을 이용했다. 수카르노는 모티프, 색상, 염색법 등 지역색이 강한 바틱을 조화시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바틱 인도네시아’로 승화시켰다. 수하르토 대통령 재임 중에는 남성의 긴소매 바틱 셔츠가 정식복장으로 인정되는 등 바틱 착용이 더 확산됐다. 바틱을 특히 좋아했던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1년 자카르타에서 ‘국제 바틱 서밋’을 개최하고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첫 번째 상징물로 바틱을 언급하며 이를 문화·경제·외교적 측면에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바틱은 인도네시아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해 국제적인 위상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사회·외교적인 의미를 더해갔다.
다종족·다문화 사회 통합 수단
전통의상을 중시하는 태도는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바롱’, 미얀마의 ‘론지’, 베트남의 ‘아오자이’, 태국의 ‘쑤타이’, 말레이시아의 ‘바주 말라유(Baju Melayu)’, 라오스의 ‘씬(Sinh)’, 캄보디아의 ‘사롱’ 등을 꼽을 수 있다. 전통의상은 유용한 외교 수단이기도 하다.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세계 정상들이 바틱을 착용한 이후 APEC 정상회의에서는 개최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이 관례화됐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때는 각국 정상이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했을 때 조코위 대통령은 쇼핑센터에서 바틱을 구매해 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같이 착용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정신·문화의 상징인 바틱은 명실상부한 인도네시아 외교의 첨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