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전쟁하는 자세와 국산화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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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국산화 '플랜B'
화관법 등은 어찌할 건가
정책순위 조정할 담대함 있나
압도적 기업가정신 돌아보고
가능성·희망 냉정히 구분해야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
화관법 등은 어찌할 건가
정책순위 조정할 담대함 있나
압도적 기업가정신 돌아보고
가능성·희망 냉정히 구분해야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
치열했던 여름도 끝나가나 보다. 저녁 바람엔 선선함이 실려오고 아우성치던 매미떼의 울음도 맥이 빠졌다. 무덥고 습한 여름이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지만, 여름이 시작되던 7월 초 한국 경제를 강타한 일본발 무역공습 경보는 현재 진행형이다.
소재·부품 경쟁력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한 축을 담당해온 일본이 공급 방식을 예측 불가능하게 자의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일본 소재와 한국의 제조능력을 결합해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을 생산해온 한국 제조업의 정상적인 작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의 의도, 그들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내세우는 명분)는 이번 여름 내내 치열하게 논의되고 분석됐다. 관건은 한국이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가다.
일본으로부터 소재 확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면 ‘플랜B’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지사. 일본이 아닌 제3국으로부터 소재를 확보하는 방법과 국산화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한국 정부는 국산화를 플랜B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핵심소재마다 국산화 시간표가 마련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기술자립이 가능하다면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어느 정치인 출신 장관 말대로 중소기업의 기술을 사장시킨 대기업의 횡포 때문일까. 직접 직원을 고용하고 월급 줘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현실성이 적다.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이뤄지는 피 말리는 품질·가격 경쟁의 압박을 매일, 매시간 감당해야 하는 기업 경영인에게 ‘실험실의 가능성’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개발과 제품 상용화 사이에는 ‘죽음의 계곡’이 있다”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현장 경험에서 나온 증언은 핵심소재 국산화의 어려움을 웅변한다.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책(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은 소재 국산화 정책과 서로 맞지 않는다. 환경규제를 이유로 제정된 화학물질관리법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용화 직전, 죽음의 계곡에 도달하기 전에 넘어야 할 마의 산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일본 소재와 긴밀한 수급관계를 구축한 것은 이런 현실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재 국산화 정책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기존 정책들과 충돌하는 것을 예상해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한 그것은 정치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지지 기반인 노동단체, 환경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선순위 조정을 할 정치적 담대함과 상상력을 갖추고 있을까.
어려운 주문을 정부가 놀랍게 해치운다 해도 문제의 절반만 푼 것에 불과하다. 이미 국산화된 부품은 자신의 경쟁력을 시장에서 검증받아야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 대규모 생산, 품질 관리,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고, 이미 세계시장에 존재하는 품질 및 명성이 입증된 부품들과 겨뤄야 한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사는 민족 자긍심을 고양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시작된 무수한 국산화의 실패 사례로 산과 늪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실패의 행진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성공 사례가 등장하긴 했다. 한국의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반도체산업이 그 예다.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래서 ‘경제기적’이라 불린다. 기적은 상식적이고 의례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그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세계시장에 존재하는 강자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규모의 압도적인 투자를 가능케 한 기업가정신, 다른 국가가 생산해낸 핵심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국제정치적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것들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그 사라짐을 부채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미약한, 아스라한 희망에 모든 것을 다 거는 그 결기, 처절함이 멋져 보이는 것은 그것이 영화일 때뿐이다. 현실과 부둥켜안고 생존을 고심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것은 무모함과 어리석음으로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경제는 투혼으로 승리할 수 있는 한·일 축구전이 아니다. 가능성과 희망을 구분할 때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슬기롭게 돌파할 수 있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소재·부품 경쟁력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한 축을 담당해온 일본이 공급 방식을 예측 불가능하게 자의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일본 소재와 한국의 제조능력을 결합해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을 생산해온 한국 제조업의 정상적인 작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의 의도, 그들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내세우는 명분)는 이번 여름 내내 치열하게 논의되고 분석됐다. 관건은 한국이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가다.
일본으로부터 소재 확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면 ‘플랜B’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지사. 일본이 아닌 제3국으로부터 소재를 확보하는 방법과 국산화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한국 정부는 국산화를 플랜B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핵심소재마다 국산화 시간표가 마련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기술자립이 가능하다면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어느 정치인 출신 장관 말대로 중소기업의 기술을 사장시킨 대기업의 횡포 때문일까. 직접 직원을 고용하고 월급 줘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현실성이 적다.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이뤄지는 피 말리는 품질·가격 경쟁의 압박을 매일, 매시간 감당해야 하는 기업 경영인에게 ‘실험실의 가능성’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개발과 제품 상용화 사이에는 ‘죽음의 계곡’이 있다”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현장 경험에서 나온 증언은 핵심소재 국산화의 어려움을 웅변한다.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책(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은 소재 국산화 정책과 서로 맞지 않는다. 환경규제를 이유로 제정된 화학물질관리법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용화 직전, 죽음의 계곡에 도달하기 전에 넘어야 할 마의 산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일본 소재와 긴밀한 수급관계를 구축한 것은 이런 현실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재 국산화 정책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기존 정책들과 충돌하는 것을 예상해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한 그것은 정치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지지 기반인 노동단체, 환경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선순위 조정을 할 정치적 담대함과 상상력을 갖추고 있을까.
어려운 주문을 정부가 놀랍게 해치운다 해도 문제의 절반만 푼 것에 불과하다. 이미 국산화된 부품은 자신의 경쟁력을 시장에서 검증받아야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 대규모 생산, 품질 관리,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고, 이미 세계시장에 존재하는 품질 및 명성이 입증된 부품들과 겨뤄야 한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사는 민족 자긍심을 고양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시작된 무수한 국산화의 실패 사례로 산과 늪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실패의 행진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성공 사례가 등장하긴 했다. 한국의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반도체산업이 그 예다.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래서 ‘경제기적’이라 불린다. 기적은 상식적이고 의례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그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세계시장에 존재하는 강자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규모의 압도적인 투자를 가능케 한 기업가정신, 다른 국가가 생산해낸 핵심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국제정치적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것들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그 사라짐을 부채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미약한, 아스라한 희망에 모든 것을 다 거는 그 결기, 처절함이 멋져 보이는 것은 그것이 영화일 때뿐이다. 현실과 부둥켜안고 생존을 고심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것은 무모함과 어리석음으로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경제는 투혼으로 승리할 수 있는 한·일 축구전이 아니다. 가능성과 희망을 구분할 때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슬기롭게 돌파할 수 있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