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회사법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있다
‘기업 때리기’를 해야 표를 얻는지,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회사법 개정안이 45개에 이른다.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개정안을 제외하고도 그렇다. 그중에는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폐지, 차등의결권주식 도입과 같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주식회사의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내용이다. 지배구조는 정답이 없다는데, 설익은 규제법만 난무하는 셈이다. 내년 4월이 다 가기 전에 이 국회도 해산될 것이고 이들 법안은 모조리 폐기될 테니 그나마 다행이다. 투자도, 혁신도, 미래 먹거리도 모두 기업에 달려 있는데 되지도 않을 법안 만드는 데 열심인 의원들을 보면 쓴웃음만 나온다.

근래 회사법의 순수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회사법은 상법(商法)의 일부고, 상법은 민법과 같은 사법(私法)이다. 사법은 기본적으로 개인 간 이해관계 조정을 목표로 하는 법률일 뿐이다. 그 이상이어도 그 이하여도 안 된다. 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회사법도 다를 바 없다. 다만 회사는 법인이기 때문에 그 인적·물적 조직과 운영에 관한 부분이 추가된다. 회사법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회사법 영역을 침범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같은 규범, 법률의 위임한계를 뛰어넘는 시행령이 그 예다.

요즘은 시행령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 법률을 위반한 기업인을 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게 할 권한을 법무부 장관에게 부여했다. 판결에 의하지 않고 행정부의 장(長)에게 이 같은 권한을 주는 것은 명백히 죄형법정주의 위반이고, 헌법정신인 삼권 분립 위반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역시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을 강행하기 위해 공적 연기금에 무리한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재 입법 예고된 상법 시행령 개정안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상장회사 사외이사는 해당 회사 6년, 계열회사 합산 9년 이상 재직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입법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공적 성격이 강한 금융회사에 관한 기준을 사적 자치가 우선하는 일반 상장회사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다. 기업 임원은 임기제 공무원이 아니다. 오직 능력과 실적으로 평가받는 냉정한 승부사의 세계에서 9년 근무했다고 해서 그만두도록 하는 것은 전문가를 쫓아내라는 것이다.

굳이 어떤 기준을 정한다면 업계 자율규범으로 하면 된다. 영국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사외이사가 9년 이상 재직 중일 때 그 내용을 당해 회사의 연례 보고서에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 ‘기업지배구조 코드’에선 감독이사회 이사가 12년 이상 활동한 경우 ‘독립성 결여로 판단한다’고만 돼 있다. 법률이나 시행령으로 강요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우리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기준’도 이미 사외이사가 계열사 포함 10년을 재직할 경우 의결권 행사 시 반대의사를 표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실은 이것도 쓸데없는 간섭이지만, 법령에 규정하는 것보다는 낫다.

둘째, 임원 후보자에 대해 법령에서 정한 임원 결격사유 유무 외에 체납처분을 받은 사실, 과거 임원으로 재직한 기업이 회생절차 또는 파산절차를 밟은 사실을 총회소집통지서에 기재해 주주에게 통지하도록 했다. 상장회사는 대부분 금융감독원과 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고함으로써 발행주식 총수의 1% 미만 소유 주주에 대한 통지를 갈음한다. 전자공고를 통해 체납처분이나 부실기업 재직 사실은 누구나 열람 가능한 상태로 공개되는데, 시스템에 한 번 공고된 사항은 정정은 가능하나 공고기간이 없어 회사가 상장폐지될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죽어서도 없어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된다. 분명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며 인권 침해다. 본인의 명예훼손은 물론 가족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국회를 통한 입법이 어렵다고 해서 국회를 통한 공론화 없이 행정부가 시행령 등으로 대충 처리하려 들면 이는 삼권 분립의 헌법정신에 어긋나고 국가 법체계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