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창의와 혁신의 장소-옥스브리지 이야기 Ⅱ
1980년 파이낸셜타임스 기자인 페타 레비가 1960년 이후로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나는 공학, 생명과학, 서비스산업 등의 비약적인 발전을 ‘케임브리지 현상(The Cambridge Phenomenon)’이라고 묘사했다.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첨단 연구단지가 됐다. 케임브리지 도심에서 반경 20마일(약 32㎞) 이내 과학산업 단지는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실리콘 펜(Silicon Fen)’ 또는 ‘케임브리지 클러스터’로 불린다.

실리콘 펜은 소프트웨어, 전자, 바이오 연구에 집중했다. 케임브리지대와 전략적으로 협업하며 연평균 7% 이상 성장했고 357억파운드(약 50조원, 2016년 기준)가 넘는 사업 규모로 컸다. 고용 인력만 21만여 명에 이른다. 케임브리지대에서 분사한 회사만 1500여 개다. 이들은 연매출 130억파운드(약 20조원), 고용창출 6만여 명의 효과를 내고 있다. 1조원대 매출 기업만 14개이고, 10조원 넘는 회사도 2개가 나왔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수십조원에 인수한 ARM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삼성도 2018년 이곳에 AI연구소를 열었고,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케임브리지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대학의 지원 시스템이 핵심 동력이었다. 특히 물리학과인 캐번디시 랩(Cavendish Lab)은 3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이 랩의 창의적인 토양과 후예들의 노력이 ARM 등 수많은 혁신 기술 창조로 이어졌다. 건물과 연구시설이 노후화되자 대학교에서 새로운 자리에 7500만파운드(약 1150억원)를 들여 혁신 연구단지를 짓고 있다. 2021~2022년 완공되면 완전히 새로운 미래 과학의 중심이 될 예정이다.

캐번디시 랩은 2016년 기초과학에서 산업화 응용까지 한 장소에서 할 수 있는 맥스웰센터라는 융합연구센터를 열었다. 원자레벨의 과학 컴퓨팅, 머신러닝, 에너지저장, 신(新)정보통신기술(ICT) 및 컴퓨팅, 그리고 바이오 나노 융합연구에 집중하고 230명의 산업체 인력이 와서 학교 연구 인력과 공동연구를 하는 영국 최초의 융합 연구소다.

또 다른 동력은 칼리지 단위의 연구단지 조성 및 지원 시스템이다.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는 트리니티 칼리지가 1970년 세웠고 현재 130여 개 회사, 7000명이 넘는 연구 인력이 있으며 아스트라제네카 바이에르 등 유수의 제약회사와 브로드컴 등 IT 회사도 유치했다. 최근에는 미래 바이오혁신 연구로 확장하고 있다. 세인트존스 칼리지도 1987년 기술혁신센터를 설립해 지식기반 생산의 혁신, 설계 및 양산 기술, 사업화 및 특허 창출, 인력 양성 및 연구 기반의 재무 지원을 하고 있다. 이곳에 뿌리내린 회사의 5년 이상 생존율이 88%에 이른다. 영국 기업의 평균 생존율(45%)보다 월등한 기록이다.

옥스퍼드도 강력한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땅값이 비싸고 오랜 유적지여서 여유 공간 부족으로 추진에 한계가 있다. 옥스퍼드 사이언스파크는 시내에서 10㎞ 이상 떨어져 있어 공동 연구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여유 있는 땅이 많은 케임브리지는 혁신의 공간과 인력이 더 가까이 있고, 분사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는 인력, 이를 도와주려는 학교 인력들이 가까이에 자연스럽게 모여 있다. 세계 최고의 꿈을 실현해가는 장소로 이보다 더 장점 많은 곳이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