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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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대응의 ‘최전선’인 병원, 보건소가 뻥뻥 뚫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 매뉴얼에 있는 우한 폐렴 의심 환자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사를 못 받았다가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19일까지 태국을 다녀온 16번 확진자(42·여)는 의심 증세가 심해졌지만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건소에서 검사를 거부당했다. 지난달 20일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4번 확진자(55·남)는 중국에 다녀왔는데도 ‘열, 호흡기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지난 4일과 지난달 27일 각각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왜 이런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 것일까. 질본은 하루에 160명 정도에 대해서만 우한 폐렴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감염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건당국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가 보다 근본적인 이유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보건소 등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한 확진자들은 매뉴얼에 나와 있는 우한 폐렴 의심 환자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사를 거부당했다. “국민 생명이 위협받는 비상시국이란 점을 감안해 매뉴얼에 함몰되지 말고 유연성을 발휘해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질병관리본부가 17, 18번째 우한 폐렴 확진자 발생 소식을 국민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먼저 보고한 것도 관료주의, 보신주의에 파묻혀 일의 경중을 따지지 못한 사례다. 국민들에게 언론을 통해 16번째 확진자 발생 사실까지만 알린 질본은 박 장관에게 17, 18번째 확진자 발생 사실을 먼저 보고했다. 이 사실은 지난 5일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 참석한 박 장관의 메모가 언론사 카메라에 찍히면서 드러났다. 정은경 질본 본부장이 “정보공개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지난달 31일 강조한 뒤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보건당국이 ‘헛발질’로 불안감을 키우는 동안 정치인들은 자화자찬으로 국민들 화를 돋우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5일 서울 성동구 보건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도 경험했는데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간 협력은 잘 되고 있나”라고 묻자 “경험이 있어 훨씬 더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조금씩 승기를 잡아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5∼6일에 7명의 우한 폐렴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정부 차원에서는 선제적 조치들이 조금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르게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우한 폐렴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 뇌리에 남을 만한 ‘과한 선제적 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건당국의 ‘헛발질’과 정치권의 ‘자화자찬쇼’만이 선명하게 기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