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이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외환 파생상품 키코(KIKO) 분쟁 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조정안을 수용한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신한·하나·대구은행은 결정 시한을 연장했다. 금융권에서는 다른 은행들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법률적 판단을 받은 건에 다시 배상하는 것은 배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키코사건은 2007~2008년 기업이 은행과 체결한 키코 계약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손실을 보면서 일어났다. 피해기업은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 대법원은 계약이 무효·사기라는 기업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불완전 판매는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하지만 2018년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한 이후 키코 재조사를 밀어붙이면서 지난해 키코 판매 은행 6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권고 결정이 나왔다.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배임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데다 분쟁 조정을 내린 것이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10년)가 끝난 뒤라는 점에서 무리하게 배상을 추진했다는 지적이 많다. 금감원이 은행들의 ‘키코 배상 결정 불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그동안 일방적인 ‘업계 때리기’ 행보에 참다못한 은행들이 반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중요하고 시대적 흐름에도 맞다. 불완전 판매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금융소비자 보호만 강조하며 은행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금융 선진화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감독 책임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 금감원이 금융시장의 변화 흐름을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이상 조짐’이 보이면 조기에 포착해 대응할 역량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시민단체처럼 굴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