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전문가 존중과 무시의 머나먼 간극
21세기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전문지식의 몰락(death of expertise)’이다. 같은 제목의 책을 쓴 토머스 니컬스는 그 단적인 예로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전문가는 끔찍해(The experts are terrible!)”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것을 꼽는다. 전문지식은 점점 더 무시당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니컬스는 그 원인의 하나를 인터넷의 발달에서 찾는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누구나 상당히 고급 정보에 쉽게 접근하다 보니 전문가들의 의미있는 조언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평등 강조가 모든 의견이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된 탓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적 분극화(分極化) 현상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조차 진영논리에 매몰돼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무조건 배척부터 하고 본다. 그 결과 국가 운영을 책임진 사람들 사이에 ‘집단사고’가 지배해 다른 의견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전문지식이 무시된 가장 단적인 예가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감염원 차단이다. 중세부터 사용된 방법이다. 지난 6일자 미국의 저명한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도 이번 코로나19 역시 차단이 가장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자유주의자가 회장인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세 번째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부터 대구·경북지역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월 18일까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 △교회 같은 다중시설 이용 제한 △위기 경보 ‘심각’으로 격상 등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권고를 모두 무시해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한·중 간 인적 교류의 규모를 고려하면 중국이 1월 23일 우한을 봉쇄한 즉시 경계를 높여야 했지만 정부 여당은 오히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며 중국에 마스크와 방호복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때까지는 국내 확진자가 적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2월 2일을 고비로 사정은 달라졌다. 이날 국내 확진자는 한국인 12명, 중국인 3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4명과 중국인 2명은 우한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중국 전역으로부터 감염원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요구한 추가 감염원 차단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필요한 전략물자라고 강조한 마스크, 방호복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2월 내내 공항은 마스크를 들고 나가는 보따리상으로 미어터졌다. 방호복은 2월에만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월평균 수출량의 1700배인 170t(87만여 벌)이 중국에 수출됐다.

지금 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의 가장 큰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은 대만과 비교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29일 현재 대만의 확진자는 283명으로 인구 차를 감안해도 한국의 16분의 1이다. 사망자는 단 2명이다. 우리 이상으로 중국과 왕래가 많았던 대만이 이렇게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에 성공한 것은 처음부터 감염원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대만은 중국이 우한을 봉쇄하자 중국발 입국을 제한하기 시작해 2월 7일에는 중국과 홍콩·마카오에서 오는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1월 24일 마스크 수출도 전면 중단했다. 의료 인력의 출국마저 막았다. 그 결과 경제 충격 역시 미미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한국은 어떤가? 외교와 경제를 앞세워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다가 둘 다 놓쳤다. 사실 이 정부의 전문가 무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제 정책, 부동산 정책, 탈(脫)원전 정책 등에서 수많은 전문가의 경고가 무시됐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은 지금이라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거국적인 전문가 활용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