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쇼크’로 자금시장 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이나 자영업자·소상공인뿐 아니라 대기업들까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 대기업 대출이 3월 한 달간 전달 대비 8조원이나 급증한 것은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평소 같으면 조달비용이 싼 회사채시장에서 자금을 모았을 대기업 중 상당수가 은행으로 몰리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기업들이 현금부터 확보하려고 나선 게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 대기업들까지 단기자금 조달 통로인 기업어음(CP) 발행 여건을 점검하고, 그룹 차원의 현금확보 방안 마련에 나서는 등 ‘돈가뭄’을 뚫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물며 다른 대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들이 겪고 있을 어려움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 주요 기업의 ‘기초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진 게 뼈아프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각종 규제와 미·중 무역전쟁 등 대내외 요인이 겹쳐 매출기준 30대 상장사의 지난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전년보다 3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금 대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4월 중 쓰러지는 곳이 나올 수 있다”는 ‘4월 위기설’이 나돌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현실을 지나치게 안일하게 보는 듯한 인상을 시장에 주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총 29조원 규모의 자금을 푸는 내용의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방안’을 발표할 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한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은 위원장은 “(이번 위기를) 대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대기업이 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시장에 자금은 공급하겠지만 정부가 나서 기업 신용까지 책임지기는 어렵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시한 셈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대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미국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중앙은행(Fed)이 ‘기업어음매입기구’를 설립하고, 산하에 설립되는 특수목적법인에 재무부가 100억달러의 신용보호자금을 제공키로 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기업 신용보강에 나서고 있다. 뉴욕증시 급락세가 멈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달리 대기업 중에서 혹여 ‘흑자부도’라도 나는 곳이 생긴다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대기업 부도→대규모 실직→경제위기 가중’이라는 악순환이 불을 보듯 뻔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했던 대로다. 지금이라도 ‘기업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정부가 신용을 책임지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는 게 시급하다. 위기에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후회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