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40)] 두테르테와 필리핀 가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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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봉쇄령을 어기고 군경에 위협을 가할 경우 사살하라”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가 벌인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미국에서 인권침해 비판이 일었을 때는 “미국 식민통치 시절 민다나오섬에서만 수십만 명의 모로인(필리핀 무슬림)이 학살당했다. 미국은 그 역사적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지난 1월 미국 정부가 그의 측근이자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해온 로널드 델라로사 전 경찰청장(현 상원의원)의 미국방문 비자를 취소한 데 반발해 양국 합동군사훈련의 법적 장치인 ‘방문군협정(VFA)’을 종료할 것임을 통보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 대기업들도 압박하고 있다. 마닐라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아얄라그룹과 퍼스트퍼시픽그룹 회장에게 “그냥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문제의 발단은 마닐라의 물 부족 사태였다. 두테르테는 정부가 이들 회사와 1997년 맺은 계약이 불공정하다며 재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또 금융·미디어 재벌 로페스 가문이 대주주인 필리핀 최대 방송사 ABC-CBN에도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폐쇄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에 대해 두테르테가 필리핀의 고질적인 과두지배 구조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마르코스 시절 후퇴한 민주주의
22년간 다바오 시장을 지낸 두테르테는 2016년 대선에서 당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 지지하는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필리핀은 소수의 유력 가문이 정치와 경제를 지배해 왔다. 로하스 전 내무장관은 조부가 초대 대통령이다. 베니그노 아키노 11대 대통령의 모친이 코라손 아키노 6대 대통령이고, 글로리아 아로요 13·14대 대통령도 부친이 4대 대통령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이다. 그런 점에서 중앙 유력 정치 가문이 아니라 민다나오섬 출신인 두테르테의 등장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필리핀의 민주화 과정은 험난했다. 380여 년에 걸친 스페인, 미국 및 일본의 지배로부터 1946년 독립한 필리핀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1960년대까지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의 민주정치와 경제를 발전시켰다. 6·25전쟁 때는 7420명의 군인을 파병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21년간 장기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부정부패는 심화됐다. 급기야 1986년 2월 시민혁명이 일어나 마르코스는 하와이로 망명했다. 필리핀의 민주화 바람은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6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한 코라손 아키노는 6년 단임 대통령제로 개헌하고 정당정치 및 지방자치 활성화 등 절차적 민주화 조치를 도입했다. 특히 유력 가문들의 세습적 지배를 타파하기 위해 헌법조항에 ‘정치가문(political dynasty) 금지’를 명시하고 상·하원 의원의 연임을 제한했다(6년 임기의 상원의원은 2회, 3년 임기의 하원의원은 3회까지 연임 가능). 그러나 토지개혁 등 개혁 조치들은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혔다. 헌법상의 ‘반(反)정치가문’ 조항을 뒷받침할 법령 제정이 무산됐고, 의원직 연임제한 규정도 가족에 의한 승계라는 편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의미가 무색해졌다.
개혁이 불가피한 과두지배 체제
필리핀의 과두지배 체제는 스페인 및 미국 식민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지배 시기 소수의 토착 엘리트집단만이 지배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898년 필리핀을 지배하게 된 미국은 자치를 장려했지만, 소수 자산가에게만 선거권을 줘 이들이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게 됐다. 필리핀의 가족·친족 중시 및 후원·수혜관계 문화도 가문 정치를 타파하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22년 차기 대선까지 2년 남짓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5월 중간선거에서 압승하며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발판을 마련했다. 마약과의 전쟁 등 강력한 조치에도 70~80%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과거 집권 세력과는 다른 실천적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위기는 두테르테의 대응 역량에 따라 커다란 도전이 될 수 있다. 두테르테의 강경 일변도 정책에 대해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두테르테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다바오 시장을 장녀에게 물려주고, 지난해 다바오 부시장이던 장남이 하원의원에 당선되자 그 자리를 차남이 꿰찬 것에 대해 두테르테의 새로운 정치가문화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정 대기업은 압박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몇몇 기업은 지원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두테르테가 공약한 부패 척결과 불평등 타파를 위해서는 필리핀 과두지배 체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두테르테가 당면의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가며 필리핀의 정치·경제 발전을 이끌지 주목된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두테르테는 필리핀 대기업들도 압박하고 있다. 마닐라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아얄라그룹과 퍼스트퍼시픽그룹 회장에게 “그냥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문제의 발단은 마닐라의 물 부족 사태였다. 두테르테는 정부가 이들 회사와 1997년 맺은 계약이 불공정하다며 재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또 금융·미디어 재벌 로페스 가문이 대주주인 필리핀 최대 방송사 ABC-CBN에도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폐쇄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에 대해 두테르테가 필리핀의 고질적인 과두지배 구조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마르코스 시절 후퇴한 민주주의
22년간 다바오 시장을 지낸 두테르테는 2016년 대선에서 당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 지지하는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필리핀은 소수의 유력 가문이 정치와 경제를 지배해 왔다. 로하스 전 내무장관은 조부가 초대 대통령이다. 베니그노 아키노 11대 대통령의 모친이 코라손 아키노 6대 대통령이고, 글로리아 아로요 13·14대 대통령도 부친이 4대 대통령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이다. 그런 점에서 중앙 유력 정치 가문이 아니라 민다나오섬 출신인 두테르테의 등장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필리핀의 민주화 과정은 험난했다. 380여 년에 걸친 스페인, 미국 및 일본의 지배로부터 1946년 독립한 필리핀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1960년대까지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의 민주정치와 경제를 발전시켰다. 6·25전쟁 때는 7420명의 군인을 파병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21년간 장기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부정부패는 심화됐다. 급기야 1986년 2월 시민혁명이 일어나 마르코스는 하와이로 망명했다. 필리핀의 민주화 바람은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6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한 코라손 아키노는 6년 단임 대통령제로 개헌하고 정당정치 및 지방자치 활성화 등 절차적 민주화 조치를 도입했다. 특히 유력 가문들의 세습적 지배를 타파하기 위해 헌법조항에 ‘정치가문(political dynasty) 금지’를 명시하고 상·하원 의원의 연임을 제한했다(6년 임기의 상원의원은 2회, 3년 임기의 하원의원은 3회까지 연임 가능). 그러나 토지개혁 등 개혁 조치들은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혔다. 헌법상의 ‘반(反)정치가문’ 조항을 뒷받침할 법령 제정이 무산됐고, 의원직 연임제한 규정도 가족에 의한 승계라는 편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의미가 무색해졌다.
개혁이 불가피한 과두지배 체제
필리핀의 과두지배 체제는 스페인 및 미국 식민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지배 시기 소수의 토착 엘리트집단만이 지배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898년 필리핀을 지배하게 된 미국은 자치를 장려했지만, 소수 자산가에게만 선거권을 줘 이들이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게 됐다. 필리핀의 가족·친족 중시 및 후원·수혜관계 문화도 가문 정치를 타파하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22년 차기 대선까지 2년 남짓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5월 중간선거에서 압승하며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발판을 마련했다. 마약과의 전쟁 등 강력한 조치에도 70~80%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과거 집권 세력과는 다른 실천적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위기는 두테르테의 대응 역량에 따라 커다란 도전이 될 수 있다. 두테르테의 강경 일변도 정책에 대해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두테르테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다바오 시장을 장녀에게 물려주고, 지난해 다바오 부시장이던 장남이 하원의원에 당선되자 그 자리를 차남이 꿰찬 것에 대해 두테르테의 새로운 정치가문화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정 대기업은 압박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몇몇 기업은 지원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두테르테가 공약한 부패 척결과 불평등 타파를 위해서는 필리핀 과두지배 체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두테르테가 당면의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가며 필리핀의 정치·경제 발전을 이끌지 주목된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