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업계가 ‘최저임금법에 보장된 임금을 못 받았다’는 택시기사들의 무더기 소송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한경 보도(5월 18일자 A1, 4면)다. 수도권과 부산의 602개 택시회사 중 ‘임금청구소송’에 휘말린 곳이 373개사로 62%에 달한다. 서울에선 10곳 중 7곳, 부산에선 10곳 중 9곳이 송사를 겪는 초유의 사태다.

예상을 뛰어넘는 소송전으로 인해 택시업계에서는 줄도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감소한 판에 패소 시 ‘회사당 20억원’이라는 만만찮은 비용을 부담해야 해서다. 지난해 4월의 대법원 판결이 이런 혼란의 빌미가 됐다. 당시 대법원은 사납금(회사로 귀속되는 돈)을 인상하지 않는 대신 ‘소정 근로시간’을 줄이는 내용으로 개정된 ‘취업 규칙’을 ‘무효’로 판시했다. 고정 급여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회사가 탈법행위를 했다는 설명이었다.

줄소송을 부른 이 판결은 처음부터 택시업계의 특수성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은 기본 급여를 낮추고 운행한 만큼 추가 수입이 생기는 임금체계를 선호한다. 택시 노사가 소정근로시간을 조정해 사납금 부담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개정한 것을 불법으로 본 판결이 ‘기울어졌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노사 자율협의는 ‘높은 수준의 신뢰’에 기초한 선진국형 노사관계로 가기 위한 기본전제다. 그런 만큼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민법상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의 존중이 필수적이다. 유감스럽게도 현 정부 들어 신의칙이 경시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자본잠식으로 대주주가 교체된 상황조차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아니라며 신의칙 적용을 배제했다. 이래서야 법적 안정성과 노사 신뢰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사법부의 인식이 복잡다단한 시장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거대 노조에는 약하고 사측의 정당한 노무관리는 백안시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사법부는 중립적인 최종 심판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