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코로나, 대학에 근본적 질문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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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풍속도 만든 대학 강의
학생 "사이버대 입학했냐" 불만
사회 성찰하는 지성공동체 아닌
정년 보장과 정부 과제에 목매
코로나가 대학 위기로 내몰아
해결책은 본질에서 벗어나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 >
학생 "사이버대 입학했냐" 불만
사회 성찰하는 지성공동체 아닌
정년 보장과 정부 과제에 목매
코로나가 대학 위기로 내몰아
해결책은 본질에서 벗어나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 >
유례없던 봄학기가 끝났다. 세계를 강타한 보이지 않는 인류의 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는 대학 강의실을 초토화시켰다. 개강도 2주 늦었다. 강의실은 사이버공간으로 이동했다. 생애 처음으로 온라인 강의를 해야 하는 교수가 대부분이었다.
사전 제작한 강의자료를 올리면 예정된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자료를 내려받아 학습하고 과제를 제출하거나, 실시간에 사이버 공간에서 학생들을 만나 수업하는 방식이 뉴 노멀이 됐다. 너무 많은 동영상 자료가 올라가는 바람에 과부하가 걸린 학교 서버가 다운되고, 동시에 많은 학생이 접속하는 통에 강의 화면이 끊기는 ‘예상된 사고’는 발생했지만 기술적인 문제는 빠르게 해결됐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지역 봉쇄로 감염을 차단하던 그 겨울. 그때는 온라인 강의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끝까지 온라인으로 가야 했음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더구나 한국처럼 방역에 선전한 나라도 없는데.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도 내 학생들이 꼬박꼬박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이 이뤄낸 조그마한 기적이지만, 온라인 강의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냈다. 교수가 올린 강의자료를 인강(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신세대 학생들은 ‘빨리빨리’의 대한민국답게 2배속 빨리 돌리기로 소화하면서 “코로나 시대 교수의 경쟁력은 목소리”라는 새로운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대학에 입학했는데 알고 보니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학생들의 좌절감은 등록금 반환으로 표출되고 있다. 학생들의 불만은 단지 온라인 강의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사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성공동체와는 다른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대와 사회의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 높은 방향을 제시하는 지성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곳이 된 지는 좀 됐다. 정부 프로젝트를 따지 않으면 지속적인 연구 재원 확보가 어렵고, 프로젝트 심사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대학은 정부가 내세우는 양적 지표 충족에 혈안이다.
양적 지표의 핵심은 교수의 논문점수다. 문제는 논문점수가 연구의 깊이 및 탁월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려면 익명의 심사자들의 까다로운 심사와 엄격한 수정으로 몇 년에 걸치는 세월과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당장의 승진, 궁극적인 정년 보장을 위해 논문점수를 충족해야 하는 교수들은 ‘짧은 시간’에 실릴 수 있는 논문 쓰기를 선택한다. 점수가 높은 하나의 논문에 위험하게 매달리기보다 점수는 낮지만 다수의 논문이라는 비교적 쉬운 길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학생 없는 대학은 존재하지 않지만 “강의 안 하고 논문만 쓰면 좋겠다”는 후배 교수들의 볼멘소리는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인 대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투영한다. 논문 연구, 입시 출제, 감독, 평가, 각종 위원회 봉사 등 시간을 다투는 일에 강의는 늘 밀리기 마련이다. 어쩌다 대학이 여기까지 내몰렸을까. 자신의 정년 보장 여부가 결정되는 논문에 교수도 목을 매달고, 교수들의 논문점수로 대학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시대와 사회의 고민은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다.
학생들 역시 학점지상주의에 빠져 읽어야 할 논문 분량이 많고, 과제도 많고, 까다로운 시험을 출제하는 교수들의 강의는 회피해왔다. 초과학점을 신청하고 성적이 시원찮은 교과목은 최종 졸업 성적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선택적 학점 폐지제’를 학생들 스스로 주장했던 시절도 있었다. 수강생 부족으로 자신의 강의가 폐강 위기에 몰린 경험이 있는 교수가 학생들의 학점지상주의에 영합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디지털 정보 홍수 시대, 코로나19는 대학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그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것이다. 지식만 전달하는 강의는 온라인으로, 인공지능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버린 것이다. 온라인 강의로 인한 불만이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로 터져나오고, 표심을 붙잡으려는 정치권은 세금으로 반환하겠다는 발상에 스스로 신통해할지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에서는 한참 빗나갔다.
사전 제작한 강의자료를 올리면 예정된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자료를 내려받아 학습하고 과제를 제출하거나, 실시간에 사이버 공간에서 학생들을 만나 수업하는 방식이 뉴 노멀이 됐다. 너무 많은 동영상 자료가 올라가는 바람에 과부하가 걸린 학교 서버가 다운되고, 동시에 많은 학생이 접속하는 통에 강의 화면이 끊기는 ‘예상된 사고’는 발생했지만 기술적인 문제는 빠르게 해결됐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지역 봉쇄로 감염을 차단하던 그 겨울. 그때는 온라인 강의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끝까지 온라인으로 가야 했음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더구나 한국처럼 방역에 선전한 나라도 없는데.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도 내 학생들이 꼬박꼬박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이 이뤄낸 조그마한 기적이지만, 온라인 강의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냈다. 교수가 올린 강의자료를 인강(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신세대 학생들은 ‘빨리빨리’의 대한민국답게 2배속 빨리 돌리기로 소화하면서 “코로나 시대 교수의 경쟁력은 목소리”라는 새로운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대학에 입학했는데 알고 보니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학생들의 좌절감은 등록금 반환으로 표출되고 있다. 학생들의 불만은 단지 온라인 강의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사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성공동체와는 다른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대와 사회의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 높은 방향을 제시하는 지성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곳이 된 지는 좀 됐다. 정부 프로젝트를 따지 않으면 지속적인 연구 재원 확보가 어렵고, 프로젝트 심사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대학은 정부가 내세우는 양적 지표 충족에 혈안이다.
양적 지표의 핵심은 교수의 논문점수다. 문제는 논문점수가 연구의 깊이 및 탁월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려면 익명의 심사자들의 까다로운 심사와 엄격한 수정으로 몇 년에 걸치는 세월과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당장의 승진, 궁극적인 정년 보장을 위해 논문점수를 충족해야 하는 교수들은 ‘짧은 시간’에 실릴 수 있는 논문 쓰기를 선택한다. 점수가 높은 하나의 논문에 위험하게 매달리기보다 점수는 낮지만 다수의 논문이라는 비교적 쉬운 길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학생 없는 대학은 존재하지 않지만 “강의 안 하고 논문만 쓰면 좋겠다”는 후배 교수들의 볼멘소리는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인 대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투영한다. 논문 연구, 입시 출제, 감독, 평가, 각종 위원회 봉사 등 시간을 다투는 일에 강의는 늘 밀리기 마련이다. 어쩌다 대학이 여기까지 내몰렸을까. 자신의 정년 보장 여부가 결정되는 논문에 교수도 목을 매달고, 교수들의 논문점수로 대학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시대와 사회의 고민은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다.
학생들 역시 학점지상주의에 빠져 읽어야 할 논문 분량이 많고, 과제도 많고, 까다로운 시험을 출제하는 교수들의 강의는 회피해왔다. 초과학점을 신청하고 성적이 시원찮은 교과목은 최종 졸업 성적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선택적 학점 폐지제’를 학생들 스스로 주장했던 시절도 있었다. 수강생 부족으로 자신의 강의가 폐강 위기에 몰린 경험이 있는 교수가 학생들의 학점지상주의에 영합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디지털 정보 홍수 시대, 코로나19는 대학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그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것이다. 지식만 전달하는 강의는 온라인으로, 인공지능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버린 것이다. 온라인 강의로 인한 불만이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로 터져나오고, 표심을 붙잡으려는 정치권은 세금으로 반환하겠다는 발상에 스스로 신통해할지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에서는 한참 빗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