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젠 기업을 놓아주자
반대 10 찬성 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여부에 대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표결이다. 찬반이 팽팽할 것이란 관측과 달리 불기소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에 아예 수사 중단까지 권고했다. 이쯤 되면 검찰의 완패다. 삼성 내부에서조차 얼떨떨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당초 법조계에선 검찰 수사가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재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분석이 우세했다. 게다가 수사심의위 민간위원은 검찰총장이 위촉한다. 변호사, 학계, 시민단체 출신 민간위원 250명 중 15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수사심의위를 구성했지만 ‘모집단’ 자체가 검찰의 기소권을 존중하는 의견을 가진 쪽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무소불위 검찰에 대한 경고

검찰도 기소 권고를 자신하는 분위기였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 “기소로 방향을 정했다는 건 추측이다. 기소심의위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만큼 결과를 낙관했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선 이번 결과를 두고 무소불위 검찰에 대한 사회의 경고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회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범죄 혐의 자체의 적절성뿐만 아니라 지난 1년7개월간 이뤄진 검찰 수사 전체에 대한 평가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이 만든 조직이다. 검찰은 삼성이 지난 3일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적절한지 수사심의위에서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지 하루 만에 이 부회장의 영장을 청구했다. 법에 규정된 구제 절차를 받아보기도 전에 구속부터 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연스레 “검찰은 법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 스스로 수사심의위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급한 영장 청구가 역으로 검찰 수사가 과했다는 걸 인정한 꼴이라는 여론도 형성됐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이 자신이 짠 덫에 걸린 꼴”이라고 했다.

경제계는 이번 결정이 검찰의 무리한 법집행과 기업인을 범죄시하는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범죄 혐의를 종합하면 삼성 경영진은 그 자체로 범죄집단과 다름없다.

'기업인=범죄자' 시각 벗어나야

투자와 사업 확대, 상장을 통한 기업가치 증가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은 불법적인 합병과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범죄 행위로 간주되고,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임원들은 범죄에 가담한 인물로 매도당했다. 자본시장도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조작할 수 있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검찰의 한건주의에 걸린 기업들은 예외 없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법조계 출신 한 대기업 임원은 “검찰 시각에서 보면 CEO들은 잠재적 범죄자나 다름없다. 검찰은 정의를 앞세워 자기 이익만 수호하는 집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라고 한탄했다.

검찰이 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전례를 깨고 기소를 강행할 수 있을까. 검찰은 말을 아끼면서도 이 부회장 영장 기각 당시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법원의 판단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정한 방향대로 움직일 태세다. 여당 일각에서도 전가의 보도인 ‘유전무죄’ 프레임을 꺼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 검찰청법에 따른 규정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거악(巨惡)과 싸운다”는 자기 최면과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검찰 스스로 괴물이 되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볼 때다.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