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이 혼선을 거듭하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는 ‘없었던 일’로 정리됐다. 정부가 주택공급 방안으로 서울 주변의 그린벨트 해제를 거론했지만, 서울시는 물론 여권 잠룡들마저 반대하자 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례회동에서 안 풀기로 결론냈다. 이로써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처음 말을 꺼내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호응했던 그린벨트 해제 방안은 1주일 만에 폐기됐다.

그린벨트 해제 백지화 과정을 보면 정부가 과연 주택공급 확대에 대한 큰 그림을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세금폭탄 등 주택수요 억제책만 내놓던 정부가 공급확대로 눈을 돌린 건 지난 2일 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과 함께 공급확대도 지시하면서부터다. 이후 정부는 주택공급확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택공급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기는커녕 △서울 강남의 공공 유휴부지 개발 △그린벨트 해제 △군 소유 골프장 활용 등 백가쟁명식 제안이 흘러나왔다. 마치 정부가 무책임하게 아이디어를 던지고 여론을 살피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줬다. 그때마다 관련 지역의 땅값은 출렁였다.

이런 식이라면 주택공급도 땜질 대책으로 일관하다 실패한 수요 억제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 3년간 대출 억제와 세금 강화를 통한 주택수요 억제책을 무한 반복했다. 집값이 오른 지역에 규제를 강화한 뒤 풍선효과로 주변 집값이 뛰면 규제지역을 확대하고 강도를 높이는 식이었다. 이렇게 부동산 대책을 22번 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처음부터 집값 상승의 원인을 주택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찾고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책을 병행하지 않은 채 투기꾼만 잡겠다고 나선 ‘부동산 정치’의 필연적 귀결이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곳에 좋은 집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려면 냉정하게 주택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강남 집부자만 배불린다’는 편견으로 막고 있는 서울 도심의 재건축 규제 완화도 금기시해선 안 된다. 이런 폭넓은 논의를 통해 주택 공급확대 로드맵을 수립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줘야 정책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그린벨트 논란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신뢰를 추락시킨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